대지진 겪은 뒤 “혼자는 무서워”  결혼정보업체 회원 급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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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는 나라가 싱글 남녀들에게 살기 편한 이유 중 하나. 바로 공공장소에서 연인들의 애정 행각을 좀처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감정을 극도로 배려하는 ‘메이와쿠(迷惑) 문화’의 일환인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낀 연인도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일본에서는 ‘연애를 안 한다’는 게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듯도 하다. 연애를 귀찮아하는 ‘초식남’ ‘건어물녀’들의 이야기는 이미 수년간 대중문화의 단골 소재다. 지난 11일 일본 내각부는 지난해 9~10월 사이 20~30대 남녀 1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혼·가족관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 조사에서 20~30대 미혼 남녀의 64%가 “현재 사귀는 상대가 없다”고 답했다. 연애를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내 취미생활에 집중하고 싶어서(56%)”와 함께 “연애는 귀찮으니까(55%)”였다.

그러나 지난 3월 대지진 이후 일본 독신 남녀들이 변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그동안 ‘혼자가 편해. 연애도 결혼도 귀찮아’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생애 최대의 공포를 경험한 뒤 결혼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진 이후 “혼자 집에 있기가 무섭다” “여진이 계속되는 불안한 밤,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 쓸쓸했다”고 말하는 여성들이 부쩍 많아졌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실제로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여성들도 크게 늘었다.

일본 최대 결혼정보업체인 ‘오넷’에는 지진 이후 여성 신규회원 수가 20%나 증가했다. 때맞춰 결혼을 통해 행복을 꿈꾸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도 인기리에 방송 중이다. 인기 그룹 ‘SMAP’의 가토리 싱고와 요즘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배우 구로키 메이사가 출연하는 후지TV의 ‘행복해지자(幸せになろうよ·사진)’는 결혼정보회사를 찾은 싱글 남녀들과 이들을 맺어 주기 위해 노력하는 커플매니저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진이 일종의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한때 한국인들의 인간 관계를 휘저어 놓았던 ‘아이러브스쿨’의 자연재해 판이라고 할까. 고교 동창이나 옛날 애인, 잠깐 만나다 연락이 끊긴 이성 등에게 “지진, 괜찮았어요? 언제 한번 봐요”라는 연락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주간포스트는 전했다. 한 30대 여성은 “지진으로 전화가 불통인 가운데 지금 누가 나를 찾고 있을까, 내가 가장 연락을 취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등을 생각하면서 그동안의 연애와 인간 관계를 통째로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 와중에 터진 일본 피겨스타 아사다 마오와 다카하시 다이스케의 열애설도 이런 분석에 신빙성을 더한다. 대지진 후 충격을 받은 아사다가 불안을 느끼며 연습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다카하시가 옆에서 격려하면서 지켜 줬고, 이것이 연애감정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흠, 이러다 조만간 “지진 후 자꾸 ‘발연기’로 빠지려는 저를 그가 잡아 줬어요” “지진 후 망가진 비브라토를 그가 참고 들어줬어요” 등 지진이 맺어 준 러브스토리가 시리즈로 등장하는 건 아닐지.

이영희 misquick@joongang.co.kr |

중앙일보 기자로 일하다 현재 도쿄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고 있다. 아이돌과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을 학업으로 승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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