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성 행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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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호 33면

“돈 욕심 줄이고, 건강과 가족에게 더 신경 써라. 그게 행복해지는 길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의 충고다. 그가 오랜 인생의 지혜를 통해 선험적으로 한 말이 아니다. 미국인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통계조사를 실시한 끝에 얻은 객관적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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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털린은 1960년부터 90년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은 훨씬 잘살게 됐지만 행복도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쿠바·유고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이를 근거로 그는 부유한 사회가 빈곤한 사회보다 더 행복한 건 아니라는 ‘이스털린의 역설’을 주장했다. 돈 욕심 줄이라는 충고도 그에 따른 것이다.

물론 이해는 하겠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곧이곧대로 실천하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벌 만큼 벌었으니 이젠 행복 찾아 나서자고 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말이다. 늘 빠듯하게 사는 서민에겐 오히려 공허하고 비현실적으로 들릴 법하다.

최근엔 ‘이스털린의 역설’과는 조금 다른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행복해지긴 하지만, 그런 행복은 빠르게 사그라진다는 주장이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을 비롯한 행동경제학자들의 연구 결과다. 이에 따르면 나도 돈 좀 벌었다, 잘살게 됐다 하는 뿌듯한 행복감의 유효기간은 2년 정도라 한다. 그 뒤로는 애초의 행복감이 40% 수준으로 감소한다는 것이다. 또 유권자가 투표할 때 감안하는 경제적 만족과 행복은 최근 6개월 이내의 것이라고도 한다. 물질적 행복이란 그처럼 휘발성이 강한 모양이다.

현대인의 행복은 절대적이지도 않다. 영국엔 ‘행복이란 매형보다 10달러를 더 버는 것’이란 농담도 있다.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경제학자 앤드루 클라크는 2008년 직장인의 만족도가 동료의 월급 수준에 종종 반비례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다. 행복은 시간적인 비교도 요구한다. 부(富)의 수준도 중요하지만 부유로워지는 과정이 행복에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랜저를 10년 내내 타는 것보다 처음엔 마티즈로 시작해 아반떼, 쏘나타를 거쳐 10년 뒤 그랜저를 장만하는 게 훨씬 행복감을 준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프랑스의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은 “현대 사회는 부유함보다 성장을 갈망한다”고 설명했다. 가난하지만 성장하는 국가에서 사는 게, 이미 부유하지만 정체된 나라에서 사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이는 성장국가 경제가 갑자기 침체에 빠지면 그때까지의 행복은 쉽게 불만으로 바뀐다는 뜻도 담고 있다. 신흥국 정국이 인플레 탓에 쉽게 불안해지는 이유일 수 있다.

결국 물질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행복이란 끝없이 채워줘야 하는 밑 빠진 독인 셈이다. 또 경제성장을 통해 느끼는 행복은 마치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는 듯도 하다. 요즘 여야 정당들이 앞다퉈 강조하는 ‘국민의 행복’ 역시 그런 본성을 지닌다. 그렇다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입맛 까다로운 유권자들을 만족시킬 메뉴는 뭘까. 역시 경제, 그것도 순조롭게 성장하는 경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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