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치] 아이 식습관 보면 백점짜리 엄마 알 수 있어

중앙일보

입력

[박민수 박사의 ‘9988234’ 시크릿]

가정의학과 전문의
박민수 박사

소아비만 탈출 프로젝트인 '수퍼키즈'란 프로그램의 건강멘토를 하면서 엄마들에게 가끔 가슴아픈 소리를 하게 된다. 1회 때 했던 독설 중의 하나가 '엄마가 아이를 망친다'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듣는 엄마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이들의 상태가 그만큼 심각했고 엄마들 역시 책임을 통감했기 때문이었다.

과연 우리 엄마들에게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정당했을까?
아이들의 학습이나 인격형성에 부모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그런데 이 비중을 초월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아이들의 입맛이다. 아이들의 입맛 형성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들이 쥐고 흔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습이나 인격형성에는 선생님, 친구 등 다양한 요소들이 관여하지만, 아이들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음식물의 종류와 양은 보다 직접적으로 부모의 승인과 참여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등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거의 대부분 집에서 해주는 음식으로 길들여지고 가정의 밥상머리에서 배운 식습관이 먹는 습관을 좌우한다. 사회생활을 하더라도 부모가 주는 용돈없이 인스턴트 간식거리를 사먹을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명한 부모라면 아이에게 용돈의 용처를 조리있게 질문해야 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아이들이 잘못된 입맛으로 인해 비만이나 저체중, 여러 건강상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망치지 않는 백점짜리 엄마의 첫 번째 조건은 무엇일까?

아이가 잘못된 입맛이나 식습관을 가지게 된데 과연 엄마가 어떤 식으로 관여가 되었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문제점을 알지 못하고서는 제대로 된 대처가 나올수 없다. 우리 엄마들은 아이를 자기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엄마가 아는 아이는 객관적인 아이가 아닐수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엄마와 아이만큼 강력한 결합과 연대는 없기 때문이다.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가장 가깝기 때문에 놓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모습이 있다. 내 아이는 제발 이랬으면, 내 아이는 제발 이러지 않았으면 하는 강력한 바램이 엄마눈에 비친 아이의 모습을 왜곡시킬수 있다.

얼마 전 본인의 비만으로 진료받던 엄마가 나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가장 스트레스 받는 일이 요즘 들어 특히 아이가 먹는 것이 시원찮다는 것이다. 갈수록 식탁에서 제대로 먹지 않고 건성으로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 같아 속이 무척이나 상한다고 하였다. 마침 아이를 데려왔길래 단독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엄마의 걱정을 전했다.

아이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자기도 골고루 먹어야 키도 크고 체격도 훌륭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엄마가 해준 음식들이 입맛에 안 든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얼마전 친구 생일 파티가 있어 친구집에 갔을 때 친구어머니가 해준 요리와 확연히 차이가 나더라는 것이다. 게다가 학교 영양사 선생님이 바뀌었는데 학교급식의 맛이 개선된 이후로는 집의 음식이 도저히 입에 맞지 않는다고 하였다.

맞벌이로 바쁜 엄마는 대형할인점에서 미리 만들어진 인스턴트요리를 주로 사서 말그대로 끼니를 때워주고 있었다. 냉장고 사진을 찍어오라고 했더니 냉장고에는 천연식재료 대신 각종 봉지에 담긴 인스턴트 요리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싫어하는 음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며칠연속으로 냉동만두나 튀김치킨, 로스팜 등을 먹다보면 집의 식사가 질려 도저히 먹을수가 없다는 핑계아닌 핑계가 절절하였다. 맞벌이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미안해 차마 맛이 없다는 이야기를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아이의 입맛은 건강한데 엄마의 입맛이 아이의 건강한 입맛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엄마가 바쁘다보니 제대로 된 반찬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던 탓도 있지만, 식사준비를 안하다보니 갈수록 요리하는 법을 까먹고 있었다. 정작 앞으로가 걱정되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아이의 입맛 또한 건강하지 못한 쪽으로 바뀌어 갈 것이라는데 있다.

이제 식사교육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재테크나 운동에도 투자와 연습이 필요하듯이 식사교육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앞으로도 나는 '수퍼키즈'의 엄마들에게 방송중에나 진료실에서 독설을 내뱉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나는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해하지는 않는다. 그 독설이 엄마의 가슴을 움직이고 머리를 각성시켜야만 애꿎은 우리의 수퍼키즈들이 자신이 원하지 않은 선택, 비만으로 인해 고통받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역시 지금 당장은 거슬리지만, 뒤늦은 후회로 땅을 치지 않는 미래를 키우는 최선의 조언임을 믿기 때문이다.

박민수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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