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를 빅 파더로” vs “과도정부 구성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리비아 동부도시 토브룩의 시위대가 23일(현지시간) 경찰서 옥상에서 무아마르 카다피 최고지도자의 모습을 한 허수아비를 불태우고 있다. 시위대는 토브룩을 비롯해 리비아 제2도시인 벵가지, 제3의 도시 미스라타 등을 속속 장악하고 있다. [토브룩 AP=연합뉴스]


리비아 동부지역은 물론 서부지역 일부까지 장악한 반정부세력. 결사항전 태세로 수도 트리폴리를 사수하려는 정부군과 민병대. 이들 간 최후의 대결이 임박했다는 외신 보도들이 잇따르는 가운데 현 리비아 체제 이후를 모색하려는 움직임도 양 진영에서 감지되고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dafi·69) 최고지도자의 셋째 아들 사디 카다피(Saadi Qaddafi·38·사진)는 2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새로운 어떤 체제에서도 일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2003년 이탈리아 프로축구 1부리그 페루자에서 선수로 뛰기도 했던 사디는 리비아축구협회 회장이며 리비아 영화 산업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혼란을 개혁이 필요한 리비아에 불어온 “긍정적 지각변동”으로 평가하며 “아버지는 새 정부에 조언을 해주는 ‘대부(Big Father)’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22일 카다피가 대국민 연설에서 “마지막 피 한 방울이 남을 때까지 싸우겠다”며 강경한 뜻을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디는 “시위대가 장악한 동부지역의 통치권은 조만간 회복될 것”이라면서도 “둘째 형(사이프 알이슬람 무아마르 알 카다피·39)이 현재 새 헌법을 준비하고 있으며 조만간 이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정부 시위대도 ‘포스트 카다피’ 체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23일 “반정부 시위대 소속 교수·의사 등 지식인 60여 명이 ‘과도정부를 세우고 새 헌법을 작성할 대표들로 의회를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내놓았다”고 보도했다. 반정부 시위대 인사들의 구체적 신원은 안전을 위해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카다피가 야당세력의 싹을 잘라 반정부세력보단 리비아 사회의 중심축인 부족과 군부가 나설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뉴욕 타임스는 리비아 전문가 로널드 브루스 세인트 존을 인용해 “향후 부족장들이 통치위원회를 만들어 헌법 제정 등에 나설 것이며 그 과정에서 치안유지를 담당하게 될 군이 권력 장악을 시도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권력 공백을 틈타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가 리비아에 거점을 마련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두바이에 본부를 둔 아랍권 위성채널 알아라비야는 23일 “리비아 동부 데르나 지역에 알카에다 세력이 등장해 토후국 수립을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디 역시 FT와의 인터뷰에서 “리비아엔 알카에다 병력 수천 명이 있다”며 “정부군이 동부지역에 폭격을 한 것은 이 지역 무기고가 알카에다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승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