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한 젊은 영화들 연말연초 극장가 장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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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세기말과 새 천년은 신인감독들이 맺고 시작한다. 어쨌든 젊어서 좋다. 연말과 새 천년 첫날 개봉작 리스트는 온통 싱싱한 푸른 빛이다. 연말연초를 장식할 한국영화는 줄잡아 여섯편. 다음달 11일 개봉되는 〈해피엔드〉를 비롯,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신혼여행 (身魂旅行)〉, 〈행복한 장의사〉, 〈세기말〉, 〈박하사탕〉 등이다.

대부분 다음달로 개봉일정을 잡았었으나 한석규·심은하 주연의 〈텔미썸딩〉이 품평과는 딴판으로 장기흥행 채비를 갖추자 유통망에 병목현상이 생겨 몇 편은 새 천년까지 그 일정이 늦춰질 것같다.

모두 신인들이 연출한 이 영화들의 무늬와 색깔은 감독의 생김새처럼 다채롭지만, 아직 20대든 혹은 40대든 연출감각만은 풋풋하고 싱싱하다. 다음 세기 한국영화의 신기운이 이들에게서 느껴진다면 과장일까.

가장 막내급으로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12월 24일 개봉)로 데뷔한 김태용(30). 민규동(29) 공동감독. 한국영화아카데미 13기(98년) 동기인 두 사람은 서로의 장점을 취하기 위해 공동연출을 시도했다.

큰 반향을 일으킨 지난해 〈여고괴담〉의 속편이란 통념을 깨긴 힘들겠지만, 아무튼 전편과는 뭔가 다르게 보이려고 반년이상을 고민했다.

영화는 '효신'이라는 여고생의 죽음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괴담(怪談)을 극화했다. 학교라는 공간을 무대로 현실과 상상계를 오가는 생사(生死)와 희비(喜悲)의 충돌을 담았다.

김.민 콤비는 이미 단편영화 〈열일곱〉과 〈창백한 푸른 점〉의 공동 작업으로 우의를 다졌고 앞으로도 계속 일심동체를 과시할 생각이다. "한 아이템에 대한 둘의 고민이 깊어질 수록 작품은 숙성되기 마련"이라는 게 이들이 공동 연출을 하는 근사한 이유다.

정지우(31)감독은 데뷔작치고는 주제가 묵직한 최민식. 전도연 주연의 치정극 〈해피엔드〉 (12월 11일 개봉)로 멜로와 스릴러 복합형 장르에 도전한다.

우리 영화에서 이런 시도가 드물었던만큼 새롭다 할 만하다. 정감독 역시 단편영화계 출신으로 〈사로〉 〈생강〉 등 화려한 단편 필르모그라피를 자랑한다.

충무로식 도제 시스템에서 연출 솜씨를 곰삭여온 '중고신인'들의 데뷔 무대도 주목된다.
2000년 1월 1일 개봉 예정인 〈행복한 장의사〉의 장문일(36) 감독과 〈신혼여행〉의 나홍균(38) 감독이 그들이다.

장문일 감독은 예술영화 지향의 중견 박광수. 장선우 감독 밑에서 연출 수업을 받았다. 93년 〈그 섬에 가고 싶다〉로 연출부 생활을 시작, 〈너에게 나를 보낸다〉 (95년) 등의 조감독을 거쳤다.

미술대학(홍익대) 출신답게 그는 "〈행복한 장의사〉를 자연의 색감을 살린 한폭의 수묵담채화로 그릴 것" 이라고 한다. 오현경. 임창정. 김창완이 출연한 이 작품은 '낙천 장의사' 일가의 일상을 경쾌하게 그린 코미디다.

강우석 사단의 조감독 출신인 나감독은 영화계 입문 만10년만에 세칭 '입봉'을 한다.
차승원.정선경 주연의 〈신혼여행〉은 육체와 영혼의 해체로 얽힌 섬뜩한 밀월여행이 모티브다. 나 감독은 "포스트모던적 탈장르의 실험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그밖에 〈초록물고기〉의 이창동(45) 감독과 〈넘버3〉의 송능한(40) 감독이 각각 두번째 작품 〈박하사탕〉과 〈세기말〉을 낸다.

〈박하사탕〉은 지난 10월 제4회 부산영화제에 개막작으로 선보여 데뷔작 못지않은 호평을 받았다. 〈세기말〉 (12월 11일 개봉)은 제목처럼 세기말 우리사회의 단면을 담은 풍속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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