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G2 쌍권총 찬 리더’ 10만 양성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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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2009년 10월 중국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중·일 3국 문화교류 행사 개막식에 참석한 주중 한국대사관 임성남(외시 14회) 공사가 축사를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동북아 공동체 구상에 걸맞게 3국의 문화 교류 수준이 앞으로는 물이 흐르면 도랑이 생기는 것처럼(水到渠成) 상상하지 못할 수준으로 발전하길 바란다”고 중국어로 역설했다. 한국 외교관이 깔끔하게 중국어 연설을 끝내자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주미 대사관에서 근무해 미국통으로 알려진 그가 행사 내내 상황에 따라 영어·중국어·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중국인 속으로 파고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갑자기 2년 전 에피소드를 떠올린 데는 이유가 있다. 존 헌츠먼 주중 미국대사가 내년에 있을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상반기에 대사직을 그만두고 귀국할 것이란 소식을 듣고서다. 중국어가 유창하고 중국 문제에 해박한 그는 1979년 중국과 수교한 미국 사회가 배출한 인재다. 수교 32년 만에 중국을 제대로 아는 대선 예비 후보를 배출한 미국 사회의 저력을 새삼 주목하게 된다. 자연스레 우리의 현주소를 다시 생각해 본다.

 중국이 국제무대에 떠오르자 그동안 한국에서도 중국통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담론 수준도 넘어설 때가 됐다. 지난달 끝난 미·중 정상회담을 전환점으로 삼을 만하다.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중국 국가주석과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앞으로 미·중 파트너 시대를 열어가기로 합의했다. 이를 두고 베이징 외교가에선 “미·중 동거(cohabitation)가 시작됐다”고 진단한다. 옛 소련 붕괴(1991년) 이후 20년간 계속돼온 미국의 유일 패권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렸고, 2011년은 ‘주요 2개국(G2) 동거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란 의미다.

 한반도를 둘러싼 큰 그림은 이렇게 급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중 동거시대의 대한민국에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미·중을 균형감 있게 인식하고 정확한 전략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재 아닐까. 한 손엔 영어, 다른 한 손엔 중국어를 쌍권총 삼아 무장하는 것은 기본이다. 미국 좀 알거나, 중국어 좀 하는 수준의 반쪽짜리로는 어림없다. 미·중의 전략 의도를 동시에 꿰뚫는 글로벌 안목도 갖춰야 한다.

 6자회담 차석대표를 역임한 임성남 공사는 대만에서 중국어를 배웠고 미 하버드대학에서 정치학(석사)을 공부했다. 한국의 고위급 관리 중에서 미·중을 넘나들 수 있는 극히 드문 외교관으로 꼽힌다. 세간의 평가에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겸연쩍어 한다. 그러나 그의 내공은 앞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치열하게 자기단련을 한 결과다.

 내년이면 한·중 수교 20주년이다. 임 공사처럼 쌍권총으로 무장한 중견 외교관이 쏟아져 나올 때도 됐지 싶다. 물론 외교관만으로는 부족하다. 학계·정계·재계·법조계·문화계·언론계에서 ‘G2 쌍권총 찬 리더’를 최소 10만 명은 전략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미·중 동거시대를 맞는 대한민국의 생존 해법이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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