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3남매 키워낸 보아 어머니의 감성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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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는 자다 일어나 난데없이 피아노를 두드린다. 둘째는 밥을 먹다가 머리를 땅에 박고 헤드스핀을 한다. 셋째는 노래하느라 잠시도 입을 놀리지 않는다. 이 별난 집에서 서울대 출신의 피아니스트와 홍대 미대 출신의 뮤직비디오 감독, 가수 보아가 탄생했다. 특별한 3남매를 키워낸 보아 엄마 성영자(55)씨의 감성교육 노하우를 들었다.

아이는 드넓은 바다 엄마는 작은 돛단배 한 척

 “하루는 큰 아들이 ‘왜 엄마는 공부하라는 말을 안 하냐’고 묻더군요. 친구 엄마들은 시간 맞춰 깨우고 숙제 검사하고 학원가라고 등을 떠미는데, 왜 그렇게 안 하는지 궁금했나 봐요. 전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능동적인 삶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잔소리한다고 될 일이 아니죠.”

 성씨의 자녀교육 철학은 ‘자기 생각대로 살게 하는 것’이다. 그는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만 해주고 나머지는 아이들에게 맡겼다. 이를테면 위인전이나 학습만화 같은 책들을 사다 책장에 꽂아놓기만 할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책이라면 동화책이든 만화책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해 단기간에 성적을 올리는 것보다 다양한 지식을 폭넓게 익히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놀다 지치고 할 일이 없어진 세 아이는 자기관심분야의 책을 뽑아 읽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독서하는 습관을 들였고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는 태도를 갖게 됐다.

 성씨는 “꾸지람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아이들을 구속하지 않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스스로 옳은 길을 선택하도록 했다. 개성이 강한 세 아이는 엉뚱한 사고를 많이 저질렀다. 보아는 유독 튀는 걸 좋아해 멀쩡한 바지를 잘라 핫팬츠를 만들기도 했다. 긴 생머리를 한 쪽만 짧은 단발 커트로 잘라 귀밑 애교머리까지 늘어뜨리고 나타난 적도 있다. 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보면 이런 행동이 모두 아이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고 있다는 증거더라”며 “가족회의 시간을 정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게 격려하고 열정을 지지해주라”고 조언했다.

 “아이들은 끝없는 바다에요. 엄마는 그 바다에 떠있는 돛단배 한 척이죠. 아이가 뜻을 펼치고 성장하려면 돛단배가 방향타 역할을 해줘야 해요. 바다가 어떤 해류에 몸을 뒤척이는지, 파도와 풍랑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잘 지켜봐야 해요. 엄마의 잣대로 아이의 생각을 재보려 하지 말고 마음껏 칭찬해 주세요.”

좋아하는 것에 미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라

 성씨는 “누구나 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한 가지씩 갖고 태어난다”며 “소질을 빨리 발견해 잘 키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흥미로워하는 활동, 재능, 열정을 그대로 봐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는 큰 아들 권순훤씨가 과학자가 되길 바랐지만 아들은 피아노를 좋아했다. “매일 피아노를 치고 살면 행복할 것 같다”는 아들의 말에 그는 여러가지 기대를 뒤로 미뤘다. 둘째 아들 권순욱씨는 그림을 그리거나 게임을 하는데 관심을 보였다. 하루 20시간씩 게임기를 붙들고 있을 때도 있었다. 보통 엄마 같으면 화를 내며 못하게 했겠지만 성씨는 내버려뒀다. 심지어 최신형 게임기를 사기 위해 일본까지 동행하기도 했다. 셋째 보아는 가야금을 좋아했다. 집에 있는 피아노에나 집중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켜보기로 했다. 한 3년 가야금에 매달리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노래가 제일 좋다고 했다. 비싼 돈을 주고 산 가야금은 뒷전이고 가수가 되겠다며 마이크를 들고 매일 베란다에서 노래를 불렀다.

 아이가 공부 외의 것에 관심을 보이면 일반적인 부모는 관심을 ‘공부’쪽으로 돌려놓기 위해 애를 쓴다. 이것저것 하고 싶다고 떼를 쓰면 ‘하나만 잘하라’고 면박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성씨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꿈이 바뀌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기다렸다.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발전적인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생각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무렵, 경기도 남양주의 목장 옆에 집을 지어 이사를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피아노 소리와 쿵쿵대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주민들 때문에 아이들의 열정을 막고 싶지 않았다. 급기야는 노래방 기기까지 구입했고 아이들은 산과 들을 무대 삼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내면에 감춰뒀던 감수성과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해주고 좋아하는 것에 미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지원을 해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죠.”

부모의 어려움 자식과 나눠야

 성씨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막내딸 보아가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가세가 기울었다. 집은 경매에 넘어가고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성씨 가족은 작은 밭에 기둥을 세우고 합판을 덧대 간신히 집을 만들었다. 보일러도 없고 전기도 멀리서 끌어와야 하는 초라한 상자 집이었다. 성씨는 교육비를 벌기 위해 우유판촉과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다.

 이럴 때 많은 부모는 자식에게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을 숨긴다. 그러나 성씨는 자식들과 터놓고 얘기했다.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인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아이들은 어떤 힘을 보탤 수 있을지 상의했다. 아이들은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결국 첫째는 서울대 전액 장학생이 됐고 레슨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 둘째는 미술학원에 다니며 그림을 그려 원하던 홍익대에 합격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던 보아는 힘든 내색한 번 하지 않고 일본 생활을 잘 이겨내며 스타의 자리에 우뚝 섰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갖고 있어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떳떳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세요. 독립된 인격체로 자기 몫을 해낼 수 있는 바탕을 닦아줘야 합니다.”

[사진설명] 성영자씨는 “아이들의 능력과 열정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칭찬을 자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송보명 기자 sweetycarol@joongang.co.kr 사진="김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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