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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앤드 애프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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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하루 종일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귀여운 목소리의 로고송이 흘러나온다. 음식점 체인이나 쇼핑몰 광고인가 싶어 들어보니 성형외과 광고다. 성형수술은 적어도 수술대에 올라 몸에 칼을 들이대야 하는 큰일인데 백화점에서 화장품 고르듯 이 의사 저 의사 골라서 수술하라고 노래를 불렀다. 수술하러 성형외과 가는 일이 화장품 고르는 일보다 훨씬 가벼운 일처럼 느껴졌다.

 버스 옆에도 ‘비포 앤드 애프터’ 사진을 커다랗게 달고 다니는 광고판을 쉽게 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는 몇 달마다 한 번씩 연예인들의 ‘양악 수술’ 후 변신 사진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양악 수술은 얼굴 뼈를 잘라 거의 새로 맞추는 수준의 수술이다. 얼굴이 엄청나게 달라 보이는 효과가 있긴 하지만 엄청난 출혈과 부작용으로 자칫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대수술이다. 하지만 그 연예인들의 ‘완벽 변신’ 사진을 보면 보통 사람도 ‘눈 한번 딱 감아봐?’ 하고 솔깃하게 만든다.

 한때 사채 광고의 로고송이 아이들 입에서 흘러나오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출연 연예인들까지 욕을 먹었던 때도 있지만 여전히 사채 광고는 번성하고 있다. 아무리 규제나 제한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도대체 이런 광고들에 대한 당국의 규제는 왜 이뤄지지 않는 건가 싶을 정도다. 잘못하면 생존을 위협받고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을 ‘룰루랄라 한번 해봐~’라고 노래부르며 유혹한다는 건 아니다 싶다. 이제 겨울방학이라 성형외과로서는 대목을 맞는 철인데 행여나 그 ‘애프터’ 사진에 대한 환상만 가지고 로고송을 읊조리던 아이들이 별 고민 없이 수술대에 오를 결심을 하지나 않을까 노파심이 든다.

 그런데 버스 광고판에 붙어 있는 사진을 봐도, 연예인들의 변신 사진을 봐도 ‘애프터’에서 첨단의 성형기술이 감탄스럽기는 하지만, 잘 살펴보면 거의 기형 수준의 얼굴을 가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비포’도 나쁘지 않다. 결국 그런 그들을 스스로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문제일 것이다. 요즘 미녀로 꼽히는 옆으로 쭉 찢어진 모델들의 얼굴을 생각해 보라. 몇십 년 전만 해도 못난이 인형의 얼굴 아니었나? 그걸 서양인들이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우리도 그런 얼굴을 예쁘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머리 작은 사람도 예전엔 왠지 좀 측은하고 균형 안 맞아 보인다고 여기던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도 그 전엔 동양 선수들만 나오면 ‘짜리몽땅’해 보여 안타까웠는데 요즘 한국·일본 선수들이 휩쓸고 나니 얼굴 작고 다리만 긴 서양 선수가 나오면 저래 가지고 과연 무게중심이 잡히겠나 싶어 불쌍해 보이기까지 한다. 결국은 그냥 우리의 눈꺼풀과 생각을 고쳐먹는 게 더 중요하지 않으냐는 말이다.

 하지만 방송과 인터넷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온갖 ‘굴욕’이 넘쳐난다. 여배우들의 팔 두께가 1㎝만 굵어져도 굴욕이고 요즘엔 키 크고 늘씬하고 다 멋있는 사람이라도 남들보다 머리가 조금만 커도 ‘대두 굴욕’이라며 굴욕을 강요한다. 또 몇 해 뒤에는 대두 수술이란 게 등장하지나 않을까. 멀쩡한 사람을 못난이로 만드는 이런 굴욕의 문화가 화려한 변신의 ‘애프터’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심어줄까 두렵다.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