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산지 잡아놓고 민주주의?” … 푸틴과 룰라, 미국에 비아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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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사진 아래쪽) 러시아 총리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위쪽) 브라질 대통령은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안어산지를 옹호하고 나섰다.

 푸틴 총리는 9일(현지시간)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와의 합동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비민주적인 관료국가의 우두머리라고 묘사한 미 외교전문에 관한 질문을 받자 “완전한 민주주의라면 왜 어산지를 감옥에 숨겼는가”라며 미국과 서방을 비꼬았다. 이어 “어산지를 구금한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에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라고 비난했다.

 룰라 대통령도 “어산지의 구금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일격”이라며 서방의 이중성을 문제 삼았다. 또 “서방이 어산지를 체포했지만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가 한 건이라도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내비 필레이 유엔 인권고등판문관은 “민간 기업·은행·신용카드 회사들이 위키리크스의 금융 계좌를 폐쇄시키도록 압력을 받았다”며 “일련의 사태는 정보의 유통을 검열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는 만큼 위키리크스가 누려야 하는 표현의 자유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이 위키리크스의 외교전문 공개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 상당수 유럽인들은 제국주의적 교만과 위선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 인터넷판이 10일 보도했다. 신문은 위키리크스에 대한 미 정부와 정치인들의 비난에 대해 유럽 언론은 대부분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슈머스 밀른 기자는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대부분의 기밀은 낮은 수준의 외교전문”이라며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발광’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 타임스 독일어판도 “어산지가 새로운 순교자가 되면서 이미 손상된 미국의 평판은 더욱 누더기가 됐다”고 전했다. 좌파신문 베를리너 차이퉁 역시 “미국 지도부가 위키리크스와 어산지의 입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면서 자신들의 이미지가 더 손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리정치학교의 미국 전문가 니콜 바쉬랑은 “이번 사태로 친미(親美)가 반미(反美)보다 안 좋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피가로 편집장 에티앙 무거트는 “위키리크스에 대한 미국의 격한 반응은 테러리스트들에게 주는 ‘귀중한 선물’”이라고 규정했다.

 ◆또 다른 폭로사이트 다음 주 개설=위키리크스에서 탈퇴한 사람들이 다음 주 또 다른 폭로사이트를 개설할 계획이라고 스웨덴 일간지 다겐스 뉘헤테르(DN)가 9일 보도했다. 신문은 어산지의 운영방침에 불만을 품고 이탈한 이들이 모여 폭로사이트 ‘오픈리크스(Openleaks)’를 다음 주 개설한다고 전했다. 오픈리크스는 내부고발자들이 제공하는 기밀정보를 직접 공개하지 않고, 언론과 비영리 기관 등이 시스템에 직접 접속해 기밀정보를 검토·보도하게 할 방침이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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