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치매지원센터 아시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조금이라도 정신이 맑으셨을 때 빨리 알았더 라면, 좋은 것 보여드리고 맛난 것도 사드렸을텐데….”

 치매에 걸린 친정 어머니(83)를 모시고 사는 호춘희(57서울시 노원구)씨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목이 멘다. 어머니가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7여 년 전. 사람들에게 욕을 하고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잦아졌다. 호씨는 “먹고살기도 바쁜데 어머니가 괜
한 억지와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아 ‘도대체 왜 그러시냐’며 매일 싸웠다”고 회고했다. 2~3년이 지나면서 어머니의 증상은 점점 심해졌고 2007년이 돼서야 치매검사를 받았다. 이미 많이 진행된 중증이었다. “너무 미안해서 어머니를 볼 수가 없었지요.”

 병 때문인 걸 알았지만 치매 환자를 돌보는 건 쉽지 않았다. 어머니는 온 집안을 배설물로 더럽혀 놓고도 씻기 싫다며 호씨의 머리채를 잡곤 했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너무 힘들 때가 많아 같이 죽고 싶단 생각마저 들었다. 호씨는 “그런 마음을 이해하고 다독여준 건 치매지원센터였다”며 “내게 친정과도 같은 존재”라고 소개했다.

서울시는 2007년부터 치매를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예방하기 위해 치매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60세 이상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25개 자치구의 치매지원센터에서 치매검진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실제 지난 4년간 서울시 노인 인구의 약 38%인 36만5479명이 센터를 통해 치매 조기검진을 받았다. 이 중 1만 1517명의 치매 환자와 7186명의 고위험군이 발견돼 등록관리를 받고 있다.

 서울시 복지건강본부 건강증진과 박동림 치매관리팀장은 “방치했으면 중증의 치매 환자가 될 수 있었던 이들이 치매 환자로 등록돼 체계적인 관리서비스를 받고 있다”며 “치매지원센터의 이용자가 크게 늘어 올해에만 17만3383명이 치매 조기검진을 받았다”고 말했다.

 센터는 검진 결과에 따라 이들을 정상과 고위험군·치매 환자로 구분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치매 예방 정보나 기억 증진을 위한 음악·미술·원예치료 등의 인지재활 프로그램, 방문 간호, 조호물품 제공, 치료비 지원 등을 하는 것이다. 저소득층 치매 환자에겐 의료비 부담으로 검사나 치료를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혈액검사와 MRI 검사, 치료비 등이 지원되고 있다.

 호춘희씨도 한 달에 한 번씩 치매지원센터를 방문해 중증의 어머니를 위한 치료비와 기저귀·물티슈 등 물품을 지원받고 있다. 호씨는 “무엇보다 센터에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여 대화할 수 있어 좋다”며 “환자 보호자들과 센터 간호사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얻는다”고 말했다. 치매지원센터는 실질적인 치료 외 에도 가족 모임과 야유회 행사, 치매 극복 체험수기 공모 등을 통해 치매 환자와 가족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전한다. 호씨의 사연도 올해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박 팀장은 “의식을 하든 못하든 치매로 기억을 잃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라며 “치매를 두려워만 하지 말고 올바르게 인식해 조기에 발견·치료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가까운 치매지원센터나 전국 치매 관련 시설 등에 관한 안내와 치매정보·상담이 필요하다면 서울시 치매통합관리시스템 홈페이지(www.seouldementia.kr)를 참조하면 된다. 문의02-3431-7200.

이주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