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 이종구'전 12일 개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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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구씨가 1988년에 그린 "오지리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농민의 고민과 아픔은 물론, 그 내면에 깔린 분노와 저항까지 묘사했다. 정부양곡 부대.벽보.포스터.신문 등 현실감 있는 재료를 과감하게 써서 사실적인 효과를 높였다.

화가 이종구(51.중앙대 서양화학과 교수)씨는 고향인 충남 서산 주민에게 '그림 빚'이 많다. 그가 떠난 뒤에도 고향 오지리를 지키며 농사를 짓는 동네 어른과 친구가 거저 그림 모델을 서 주었기 때문이다. 이씨가 지난 20년 한 눈 안 팔고 이 땅의 농부와 농촌을 그려온 뒷심이 그들로부터 나왔다. 밀짚모자 아래서 구릿빛으로 빛나는 농부의 얼굴, 소처럼 묵묵히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농부의 모습은 장엄하다. 쌀 한 톨을 거두기 위해 팔백 번 손길을 보내는 농심(農心)을 화가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맞들었다.

12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관장 김윤수)에서 막을 올리는 '올해의 작가 2005-이종구'는 농촌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거기서 한국인의 삶을 찾아온 농민 미술 작가의 회고전이다. 한국 현대화에 밑거름이 되었으면서도 이제는 뒷전으로 밀려 바람 잘날 없는 농촌의 나날을 그린 대표작 70여 점이 네 시기로 나눠 펼쳐진다. '1984~90: 고향땅 오지리' '1991~94: 고개 숙인 농민의 분노' '1995~2000: 희망의 씨앗을 뿌리며' '2001~2005: 우리 땅, 우리 겨레'는 자연과 한 몸이 돼 땅의 일부로 돌아가고 있는 농부의 순결한 모습을 보여준다. 급박하게 무너져 내리는 농촌이지만 그곳을 지키는 저 농부야말로 세계화에 맞설 수 있는 우리의 마지막 버팀목이라고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고 있다.

선거 포스터가 찢겨나간 벽을 배경으로 농부 셋이 쭈그리고 앉은 88년 작 '오지리에서'는 농촌의 한숨이 절로 새어나오는 작품이다. 화면에는 이종구씨를 '부대종이 작가'라 부르게 한 정부양곡 부대가 보인다. 농촌을 잘 살게 해주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사라졌지만 담배를 피워문 농부는 땅에 대한 믿음으로 다시 일어설 것이다. 7월 14일까지. 02-2188-6000.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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