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코지 “한국인 영혼 담긴 책” 반대파 설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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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외규장각 도서를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은 막판까지 일부만 인도하거나 다른 한국의 문화재를 대가로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자크 랑(71·사진) 프랑스 하원의원은 12일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 과정에서 프랑스 측에도 진통이 컸다고 밝혔다. 랑 의원은 한국·프랑스 양국 협상을 중재한 인물이다. 1992년 협상이 시작됐을 때 문화부 장관이었던 그는 10여 년 동안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주장해 왔다.

 랑 의원은 협상 타결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결심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엘리제궁(대통령궁)의 국무회의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이 이 책들은 한국인의 영혼과 역사가 담긴 것이기 때문에 조건 없이 인도하는 게 옳다는 철학적 견해를 펼치며 반대 의견을 무마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BNF 등의 프랑스 문화계에서는 줄곧 한국의 문화재를 임대받는 ‘상호 대여’ 방식을 주장했으나 사르코지 대통령이 이들을 설득해 ‘일방 대여’라는 타결책을 한국에 제시했다고 랑 의원은 설명했다.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관계자들도 프랑스 측이 수개월 전에 ‘일방 대여’라는 양보안을 제시했지만 막판 타결 과정에는 큰 난항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 측에서 합의문에 첫 5년 임대 후 자동으로 임대가 연장된다고 보장해 주는 문구를 넣자고 제안한 게 발단이었다. 협상 관계자에 따르면 프랑스 측에서 이는 자국의 국내법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이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일방 대여’라는 잠정 합의도 취소될 수 있다고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이 결렬될 위기를 맞았던 것이다.

 한·프랑스 양국은 이명박 대통령과 사르코지 대통령이 12일 서울에서 정상회담을 하기 직전까지도 이 문구의 포함 여부를 놓고 줄다리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양측은 양국 정상회담을 수시간 앞두고 ‘사르코지 대통령이 프랑스가 도서들을 다시 돌려받을 계획이 없다는 것을 이 대통령에게 구두로 표명하는 것을 조건으로 합의문에 임대 연장에 대한 부분을 명시하지 않는다’고 타협했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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