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조건부 6자회담' 선언 이후] 미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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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자회담 복귀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보도에 대해 22일 오전(현지시간)까지 미 국무부의 공식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미 언론들은 김 위원장의 발언을 자세히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날 "김 위원장이 '핵으로부터 자유로운 한반도'를 언급한 것은 6자회담으로 나오는 데 좀더 유연해졌음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권력 시스템상 그가 직접 나서서 이 같은 발언을 한 것 자체가 변화의 조짐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2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中)이 북한을 방문한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일행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조선중앙TV촬영=연합]

워싱턴 포스트는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해 '적대 의사가 없다'는 미국의 언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포스트는 '북한에는 세 마디 작은 말이 문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이 말은 북한의 체제 존립(regime survival)과 관련된 문제"라며 "북한은 마치 선회 비행을 하는 매처럼 미국의 수사와 성명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는 "최근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부드러운 언사를 써왔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국의 적대정책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북한이 미국에 대해 "성의를 보여라"고 촉구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한편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로 확정된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는 22일 서울에서 "북한의 미래가 6자회담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힐 대사는 이날 오전 조선호텔에서 열린 '동북아 평화와 발전을 위한 한.미관계' 포럼에서 "6자회담은 북한이 국제사회로의 복귀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코스며 그 첫 단계가 핵 포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지난해 6월에 마련한 제안은 여전히 유효하며 북한에 추가 설명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 김 위원장의 '조건 충족시 회담 복귀'보도와 관련, 힐 대사는 "이 자리에 오면서 들었지만 공식 답변은 할 수 없다"고 논평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 추가 조치를 취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6자회담이 언제 재개될지 주최국인 중국 측 의견을 듣고 난 뒤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자신의 방중 가능성에 대해 힐 대사는 "며칠 전 방중했기 때문에 현재로선 계획이 없다"면서 "미국은 6자회담을 성공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중국 측과 계속 연락을 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미국은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결국은 '그러니까 6자회담에 나와라'는 말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 전문가인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도 "김정일의 이런 발언에 대해 미국이 반응을 보이긴 어렵다. 미국이 지금까지의 입장을 변경할 것 같지도 않다"고 전망했다.

반면 대북 강경파인 랠프 코사 태평양포럼 회장은 "이번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은 국제사회를 너무 심하게 밀어붙인 것"이라면서 "북한은 지금 그 역풍을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한국이 핵 문제 해결과 대북 경협을 연계시킨 것이나 중국 정부가 불쾌한 반응을 보이면서 평양을 압박한 것이 점차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사 회장은 또 "북한은 상대방이 거칠게 나오면 그때서야 대응하는 버릇이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여러 차례 "6자회담에 나오는 조건으로 북한에 대해 추가 보상을 할 수 없으며 다만 북한이 회담에 나올 경우엔 여러 가지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평양의 말장난이나 협박에 더 이상 놀아나지는 않겠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서울=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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