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북한 3대 세습으로 가려 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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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 중앙방송이 김정일 부자 권력세습을 강력히 시사하는 보도를 했다. '내가 성스러운 과업을 다하지 못하면 대를 이어 아들이 하고 아들이 못하면 손자 대에 가서라도 해야 한다'는 김일성 발언을 소개한 것이다. 또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도 이런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사회주의 혁명은 대를 이어 추진해야 한다는 '계속혁명론'에 입각한 북한 언론 보도는 종종 있어 왔다. 그러나 이번 보도는 과거에 비해 주목되는 내용이 있다. 3대 이름을 모두 거론하면서 '손자' 등 구체적인 용어를 썼다. 김정일의 '수령유훈 관철론'에 대해 '대를 이어가려는 계속혁명 사상'이라고 이 방송이 의미를 부여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2인자'였던 장성택의 좌천도 이런 움직임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이번 보도만으로 부자세습이 확고하게 결정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또 북한이 어떤 권력체제를 유지해 나갈지는 그들의 선택이다. 그러나 우리로선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에 미치는 파장이 심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조롱과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선거를 통하지 않은 권력세습은 북한이 독재국가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반제 반봉건'을 외쳐 오면서 봉건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세습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은 웃음거리 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자유 증진은 피할 수 없는 세계의 흐름이다. 이런 마당에 또다시 권력을 세습시키겠다면 어느 나라가 북한을 '21세기 국가'라고 인정하겠는가. 이런 왕조 국가를 위해 어느 누가 지원에 나서려 하겠는가.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경멸받는 방식으로 후계문제를 해결해서는 결코 안 된다. 무엇이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인지 고민해야 한다. 당장 민주주의를 못한다 해도 중국식으로 노동당 내에서의 토론을 가시화하는 등 보다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정부도 북한의 후계문제에 대해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남북관계를 결정짓는 핵심요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