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최선의 친서민은 친기업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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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하지만 현 시점에서 뭐니뭐니해도 서민들 초미의 관심은 일자리 창출이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하에서 성장 없는 분배는 큰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경제분야의 우선순위는 일자리 창출과 성장이란 두 마리 토끼를 좇는 것 아니겠는가. 역설적으로 들리지 모르지만 그 두 마리 토끼를 좇기 위해서는 MB 정부의 초지(初志)인 시장주의에 입각한 친기업이 궁극적으로 고용 창출과 친서민에 최선이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경제성장은 노동력과 생산성에 달려 있다. 불행히도 우리는 유래 없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노동력은 거의 한계점에 이르렀다. 따라서 경제성장은 생산성의 증가뿐이다. 저임금의 중국과 고품질의 일본 사이에 끼인 우리에게는 제조업에서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렵다. 더구나 기술집약적인 제조업에서의 생산성 향상이란 기술의 노동대체로 노동력 감소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좇기 위해서는 작금의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제조업보다는 노동집약형 서비스산업에 치중해야 한다는 결론이 쉽게 도출된다.

최근의 맥킨지 보고서에 의하면 고소득 국가에서 지난 25년 동안 국민총생산(GDP)의 85% 이상이 서비스산업에서 창출되었고 점점 더해가는 추세라 한다. 경제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도 미국이 80%, 영국이 79%, 일본이 73% 정도인 반면에 우리는 58%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해 있다.

또한 현재 서비스산업에서 한국의 생산성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첫째로 한국이 전체 기업의 R&D에 대한 총지출은 선진국 수준이면서 서비스산업에의 R&D 지출은 G7 국가들이 GDP의 약 25%인 반면에 한국은 7% 정도로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둘째로 선진국과 달리 국내의 서비스산업은 대부분이 중소기업에 의해 발전돼 왔다. 현재 국내 서비스상품의 80%, 서비스업 고용인구의 90% 정도가 중소기업이다. 따라서 한국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대기업의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최근 들어 친서민 내지는 소득 양극화 감소 노력의 일환으로 제조업에서의 수직적인 중소기업-대기업의 관계를 수평적인 관계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보도됐다. 이는 조건이 안 맞으면 아웃소싱하는 세계적인 추세 속에서 근시안적이고 현실성도 결여됐다.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부당한 행위는 당연히 저지돼야 하지만 시장경제 논리가 아닌 인위적인 관계 설정은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소득 양극화도 세제(稅制)를 통한 소득 재분배로 단기간은 어느 정도 완화하겠지만 규모경제를 추구하고 승자에 대한 보상이 점점 커지는 시장경제에서는 피할 수 없는 세계적 현상이다. 현재로선 고용창출을 동반하는 경제성장이 진정한 친서민이다.

결론적으로 현 시점에서 친서민이라 하여 친기업에 상반되는 듯한 정책을 펴느니보다는 현안 중 현안인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의 효율적인 달성을 위한 상식적이고 설득력 있는 정책이 급선무다. 우선 그동안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제조업에 집착하지 말고 서비스업, 특히 관광·문화·사회복지·호텔·교육·의료·IT산업과 같은 노동집약적 서비스업으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 생산성 극대화를 위해 대기업 주도의 투자가 필요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윈윈 상생관계를 통해 단기성 비정규직이 아닌 장기적 고용창출이 가능하다. 더구나 우리는 높은 교육열과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열심히 일하는 양질의 노동력이라는 무기가 있어 서비스업의 혁신을 일으키기에 적절한 나라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애당초 MB 노믹스의 핵심이었던 시장경제에 입각한 친기업이 궁극적으로 고용 창출과 경제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추구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고 진정한 친서민이다. 단지 친기업이라 해도 대기업의 노동집약적 서비스산업에로의 투자 유치와 고용창출로 이어지는 중소기업과의 발전적 상생(相生)관계를 유도함은 정부 몫일 것이다.

박헌영 이화여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