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김태호 사퇴 즉각 수용 … “청문회 보고 생각 달라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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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29일 오전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내수동 ‘경희궁의 아침’ 로비에서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다. [오종택 기자]

한나라당이 27일 국회에서 개최한 의원총회는 김태호 총리 후보자 사퇴의 촉매제로 작용했다. 김 후보자를 감싸야 할 여당 의총에서 “물러나라”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온 건 김 후보자에겐 최후의 보루가 무너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의총에서 수도권 출신 소장파 의원, 그리고 친이계를 중심으로 한 의원들이 ‘김태호 총리 후보자 사퇴 불가피론’을 제기하자 김 후보자와 청와대는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 한다.

한나라당 의총 상황을 전해들은 김 후보자는 27일 밤 청와대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만났다.

김 후보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추구하는 ‘공정한 사회’는 도덕성이 기초가 돼야 하는데 총리 후보자인 내가 걸림돌이 될까 걱정스럽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임 실장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거취에 대한 나의 결정을 대통령에게 전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임 실장은 그의 뜻을 이 대통령에게 잘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한다.

임 실장은 28일 오전 이 대통령에게 김 후보자의 사퇴 의사를 전했고, 이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받아들인 걸로 이해한다”며 김 후보자의 사퇴 의사를 받아들였다 한다. 김 후보자는 29일 오전 자진 사퇴 기자회견을 했다. 이어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도 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의를 표했다. 이 대통령은 이들의 결정도 수용했다 한다. 김 후보자의 사퇴와 관련해 여권에선 “평소 인사 문제와 관련해 결정을 미루고 뜸을 들이던 이 대통령이 문제를 신속하게 정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해 청와대 참모들은 “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대통령의 생각은 달라졌다”고 설명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7일 이 대통령이 주재한 확대 비서관회의를 그 예로 들었다. 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표방한 ‘공정한 사회’를 주제로 한 이날 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위한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며 “일상 생활에서도 공정사회에 맞는 행동을 하는지 스스로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이 대목을 강조할 땐 개각의 문제점을 바로잡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며 “이 대통령도 민심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에 김 후보자 등의 사퇴 의사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일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실황을 TV를 통해 지켜보면서 참모들에게 “후보자들에게 많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등의 불만을 나타냈다고 한다. 그걸 들은 청와대 참모들은 “(후보자 몇 명을 낙마시키는 등) 적정한 수준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한다.

한나라당도 바빴다. 안상수 당 대표는 인사청문회 이후 매일 임 실장과 통화하며 국민 여론과 당의 분위기를 전했다. 당 최고위원들도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끝난 25일부터 개별적으로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 등과 접촉해 “민심이 나쁘다”는 등의 여론을 전했다 한다. 임 실장과 정 수석은 여당 분위기와 여론을 이 대통령에게 감추지 않고 알려줬다 한다.

김 후보자가 29일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총리실 주변에선 “김 후보자가 이 대통령과 통화하거나 직접 만나 사의를 전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청와대 측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만 답했다.

글=이가영·남궁욱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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