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권한 비대해진 노조는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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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기업 자동차 노조의 종업원 채용비리 사건이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이 사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어디 노조뿐이랴 하는 생각도 든다. 파업이 두려워 노조와 결탁한 회사경영진도 책임이 가볍지는 않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건을 단순히 개인비리 차원에서만 접근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경제 선진화를 추구하는 한국 사회가 노조의 위상과 역할에 관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계제가 되었다는 것을 이번 사건이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노조의 고유영역은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이다. 노조가 표를 담보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는 합당한 범위 내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더구나 통제받지 않는 집단은 구성원의 이익보다는 조직 자체의 이익, 아니 조직 리더들의 이익에 휘둘리기 십상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비대한 권한을 갖는 노조의 사회적 역기능은 서유럽의 경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실질적 조직률이 17%에 불과한 독일의 노조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시스템 개혁을 가로막아 사회 전체의 이익을 저해하고 있다. 통제받지 않는 노조가 저지른 부조리 사례가 있다. 독일 노조총동맹(DGB)은 노동자에게 값싼 주거와 따뜻한 도시환경을 제공하겠다며 건설회사 '노이에 하이마트(새로운 고향)'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사민당의 정치적 도움으로 전국 주택 및 도시개발사업에서 각종 특혜를 받아 독일 최대의 건설 콘체른으로 성장했다. 1970년대부터는 세계 각지의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리다, 마침내 프랑스 고급빌라 투기에서 참패해 부도 위기에 몰렸다. 82년에는 계열사 간 불법적 내부자금 거래, 횡령, 노조간부와 정치권에 대한 뇌물 및 불법자금 공여 등도 속속 밝혀졌다. 이 사건은 사민당 정권 붕괴를 재촉했으며, 회사도 노조와 정부재정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사실상 해체됐다.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던 노조기업이 온갖 천민자본주의적 악행을 저지르다 무너진 것이다.

현재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1% 남짓이다. 게다가 조합원의 4분의 3 정도는 300인 이상의 대기업에 소속돼 있는 정규직이다. 심하게 말해 노조는 대기업의 일부 정규직 종업원 조직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과연 이 조직이 노동자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번 사건은 비정규직 저임 노동자를 정규직 노조간부가 착취한 셈이다. 이 노조 상급조직인 민주노총이 지난 연말 비정규직 이익을 위해서라며, 노동부의 비정규직 보호법안에 반대해 총파업을 시도한 것은 이 마당에 역설적으로 들린다.

노조가 파업을 경영진 협박수단으로 삼았다는 사실도 대기업 노조의 영향력을 가늠하게 해준다. 최근 양대 노총은 노조의 고유영역이라 할 수 없는 각종 사회 현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국보법 개폐 문제.교육 정책.환경관련 국책사업, 심지어는 언론개혁.사법개혁 문제에 이르기까지 노조가 개입하는 실정이다. 이는 권한 비대화의 초기 징후라 우려된다.

노조는 자신의 고유과제로 돌아가야 한다. 인사를 비롯한 회사 경영권에 개입하려는 것도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구성원 전체를 위한 진정한 발전의 길이 무엇인지 여타 사회구성원과 같이 고민하고 협력해 왔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노조도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다. 하지만 독선에 사로잡히지 말고, 당사자 원칙을 존중하며, 정치적 영향력은 정당을 통해 합법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또한 노조는 자체 조직률부터 높여 여러 계층의 노동자를 골고루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집단의 물리적 힘이 아닌 대표성과 합리적 절차에 의해 노조활동을 해야 한다. 그것이 노동운동 정당성의 기반이기도 하다.

황신준 상지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