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탐구:전통주]3000억 시장으로 훌쩍 큰 우리 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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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전북 고창군에선 요즘 복분자 재배가 붐을 이루고 있다. 1년생 나무로 넝쿨 장미처럼 생긴 산딸기과 식물인 복분자의 열매가 복분자인데, 이것으로 빚은 붉고 고운 술이 인기를 끌면서 복분자 재배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고창군 농업지도센터의 박필재 지도사는 "복분자술이 급부상하면서 1997년만 해도 재배면적이 12㏊에 불과했으나 2001년에는 70㏊로 늘어난 뒤, 올해는 무려 1백5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며 "내년에는 인근 지역을 포함해 총 2백50㏊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복분자 술은 고(故)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9년 북한에 갈 때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 선물하면서 일반의 관심을 끌었다. 또 2000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연회장에서 건배주로 선정되면서 판매가 급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복분자 술 제조업체 매출도 크게 늘고 있다. 7∼8년 전만 해도 이 지역 4개 업체의 매출은 10억여원에 그쳤으나 지난해에는 1백50억원, 올해는 2백억원(추산)으로 뛰었다. 고창 이외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복분자주 매출까지 포함하면 올해 시장규모는 3백50억∼4백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소주·맥주·양주에 가려 있던 전통주가 최근 일반인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주로 뿌리내리고 있다.

특히 내년 1월 1일부터는 탁주·약주·청주 등 전통주의 알코올 도수 제한이 완전히 폐지돼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현재는 탁주는 3도 이상, 약주는 13도 이하, 청주는 14도 이상 등으로 제한을 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소주·맥주처럼 알코올 도수 제한 없이 다양한 상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폭발적인 성장세 구가=지난 13일 오후 7시 서울 삼성동 국순당 본사 1층 '백세주 마을' 매장. 신세대 분위기로 한껏 꾸민 30평 규모의 홀에서 20∼40대로 보이는 고객 10여명이 각종 전통주를 마시고 있다. 백세주 마을은 국순당이 자사의 주력 상품 판매 확대를 위해 만든 전문 프랜차이즈다. 올 1월 강남점에 이어 9월 본점, 12월에는 신천점을 각각 열었다. 국순당은 전통주의 저변 확대를 위해 내년부터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전통주는 92년 백세주가 첫선을 보일 때만 해도 틈새 상품에 불과했다.국순당은 92년 매출이 20억원 내외에 불과했지만 그후 폭발적으로 성장, 올해 매출이 1천6백56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순당은 현재 전통주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또 국순당 배중호 사장의 동생인 배영호 사장이 경영하는 배상면주가도 99년 '산사춘'을 내놓으며 전통주의 성장을 가속화했다.

백세주와 산사춘의 약진에 영향을 받아 지난해 4월 두산은 '군주'를, 진로는 '천국'을 선보이며 전통주 시장에 진출했다. 지난해 5월 경북의 금복주가 '화랑'을 앞세워 수도권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여기에 최근에는 복분자주·인삼주 등이 인기를 끌며 전통주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통주는 원래 쌀과 누룩을 발효시켜 맑게 여과한 청주(약주), 쌀·고구마 등을 발효시킨 뒤 증류한 소주, 청주를 거르고 난 찌꺼기에 물을 섞어 걸러낸 탁주로 나눠진다.

전통주 시장 규모는 올해 3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소주 시장이 2조원 규모인 점을 고려하면 전통주 시장도 이젠 국내 주류시장에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업체 수도 현재 1백여개로 이들은 총 1백50여 종의 다양한 전통주를 생산한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약주시장이다. 약주는 99년엔 8백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시장이 급성장해 1천82억원으로 커진 뒤 지난해에는 1천8백12억원, 올해는 2천2백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까지 30∼70%씩 성장한 셈이다. 올해는 이보다 성장세가 수그러들 것으로 보고 있지만 여전히 20% 이상을 구가할 전망이다.

두산 관계자는 이와 관련, "2002 한·일 월드컵 등으로 주류 소비가 준 데다 최근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성장세가 다소 주춤하는 것일 뿐"이라며 "도수가 낮은 술 위주의 음주문화가 확산됨에 따라 20∼30대로 이용자 층이 점차 확산하는 추세에 있어 전통주의 약진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떻게 성장했나=국내 전통주는 일제의 조선침략이 본격화하던 1907년 '주세령' 공포로 가정에서 술 제조가 금지돼 자취를 감췄다. 당시 일곱 집에 한 집 꼴로 빚었던 가양주(일반 가정에서 빚는 술)가 30년대에는 거의 사라졌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65년에는 식량난 때문에 쌀로 술을 빚지 못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이 시행돼 전통주는 더욱 침체기에 빠졌다.

그러나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 전통주의 복원과 상품화가 추진되면서 서서히 기지개를 켰다. 올림픽에 힘입어 10여종의 전통 민속주가 잇따라 등장했다. 그런데 전통주는 영세업체들의 난립과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 등으로 명절 때만 팔리는 선물용 제품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전통주가 일반인의 관심을 끈 데다 대형 주류업체의 잇따른 시장 진입으로 90년대 후반부터 큰 폭의 성장세를 보였다. 90년대 초까지만도 과일주가 많았으나 요즘에는 약주·일반 증류주·증류식 소주 등으로 다양해졌다.

김창규 기자

teente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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