궈메이 ‘트로이 목마’식 경영권 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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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중국 가전 유통시장의 최강자인 궈메이(國美)가 내분에 휘말렸다. 창업자이자 대주주인 황광위(黃光裕·41) 전 회장과 천샤오(陳曉·51) 이사회 회장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이에 따라 2008년 11월 중국 사법 당국이 황 전 회장을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큰 외풍을 맞았던 궈메이가 이번에는 심한 내홍으로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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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회장은 중국 3위의 가전 유통업체였던 융러(永樂)의 창업자로 황 전 회장이 융러를 인수하면서 궈메이의 최고경영자(CEO)로 들어온 인물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중국 유통업계에선 “천 회장은 황 전 회장이 잘못 불러들인 ‘트로이의 목마’”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1987년 베이징(北京)에서 궈메이를 설립한 황 전 회장은 천 회장이 96년 상하이(上海)에서 설립한 융러를 2006년 11월 인수했다. 황 전 회장이 천 회장을 CEO로 중용할 만큼 두 사람은 동지로 가까워졌다. 한때 중국 제1의 부자 명단에 올랐던 황 전 회장은 최고급 자동차인 마이바흐 두 대를 사들여 한 대를 천 회장에게 선물했을 만큼 그를 믿었다.

2008년 11월 당국이 황 전 회장을 상대로 대대적인 비리 조사를 진행하고 급기야 불법경영·내부자거래·뇌물공여 혐의로 구속했을 때까지도 두 사람의 갈등은 드러나지 않았다. 당국의 조사로 황 전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천 회장은 2009년 1월 이사회 회장에 올라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궈메이가 자금난에 빠지자 천 회장은 미국계 사모투자펀드(PEF) 베인캐피털로부터 32억 홍콩달러 규모의 출자를 이끌어 냈다. 또 스톡옵션을 적절히 부여해 경영진을 자기 세력으로 끌어들이며 영향력을 키웠다. 이게 알려지면서 황 전 회장 측에선 “천 회장이 사욕을 챙기려 한다”며 불만이 흘러나왔고, 급기야 5월 11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둘 사이의 갈등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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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전 회장은 이사회에서 베인캐피털이 파견한 이사 3명의 선임 안건을 밀어붙이려던 천 회장의 계획을 여동생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을 동원해 무산시켰다. 감옥에서도 그는 최대주주의 지분(33.98%)을 바탕으로 천 회장의 독주에 일격을 가한 것이었다. 얼마 뒤 14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황 전 회장은 8월 5일 “임시주총을 소집해 천 회장을 해임하라”고 이사회에 정식으로 요구했다. 천 회장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같은 날 궈메이 법인 명의로 황 전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배임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9월에 열리는 임시주총에 대비해 베인캐피털이 보유 중인 궈메이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 황 전 회장 측의 지분 비율을 29.8%로 끌어내릴 계획이다. 여기에다 자신에게 우호적인 주주를 포섭하면 의결권(지분의 3분의 2) 확보가 가능하다고 벼르고 있다.

호탕한 성격의 황 전 회장, 치밀한 전략가인 천 회장의 세 대결은 궈메이에 제품을 공급하는 삼성·LG 등 한국 가전업체들도 주시하는 빅게임이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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