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윌리엄스 주연 스릴러 스토커:사이코 노인 오싹한 훔쳐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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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원제 One Hour Photo)는 독특한 심리 스릴러다. '디 아더스''식스 센스'처럼 혼령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양들의 침묵''레드 드래곤'처럼 엽기적인 영상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스토커'는 섬뜩하다. 일상의 세밀한 재현과 그를 통한 색다른 공포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스토커'는 중견 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영화다. '죽은 시인의 사회''굿 윌 헌팅' 등에서 온화한 이미지를 주로 보여주었던 그가 두 얼굴을 가진 사이코(정신이상자)로 변신했다. 올해 '인썸니아'에서 용의주도한 살인범으로 나온 데 이어 이번엔 미치광이 스토커역을 맡았다. 이마에 파인 주름살처럼 세월과 함께 성숙해온 그의 노련미를 엿볼 수 있다.

'스토커'의 매력은 탄탄한 구조다. 신경을 서서히 압박해오는 묵직함이 살아 있다. 또 그 공포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법 리얼하다. 예컨대 누군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샅샅이 꿰고 있다면, 그래서 우리 집안의 가구 배치까지 훤하게 알고 있다면 등골이 서늘해지지 않을까.

원제가 가리키듯 영화의 소재는 사진이다. 대형 할인점에 딸린 사진 현상소에서 10년 넘게 일해온 사이(로빈 윌리엄스)는 반백(半白)의 외로운 노인이다. 자기 일엔 티끌 하나 용납하지 않을 만큼 완벽하나, 주변엔 정을 나눌 사람이 한명도 없다.

사이의 단골 손님은 니나(코니 닐슨)네 가족이다. 그는 니나의 식구를 모두 알고 있다. 바로 그들 가족이 맡긴 사진을 통해서다. 아들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가족 여행을 떠나고 등등. 그의 말에 따르면 "앨범에는 비극이 없다." 사람들은 항상 행복했던 순간만을 사진에 담기 때문이다.

남몰래 니나네 사진을 한장씩 따로 현상해온 사이. 그의 집 한벽은 온통 관련 사진으로 도배돼 있다. 니나네가 행복해 하는 만큼 사이의 외로움은 깊어지고, 그들 가족에 동참하려는 망상 또한 증폭된다. 영화는 자신의 고독을 사진을 통해 대리 만족하려는 사이의 비정상적 내면을 촘촘히 따라간다.

니나의 남편 윌(마이클 바탄)이 바람을 피우는 것을 목격한 사이. 그는 자신이 그간 믿어왔던 '행복의 환상'이 와르르 무너지자 직접 윌을 응징하려 나선다. 그에게 무심했던 세상에 대해 쌓아왔던 적개심이 일순간에 폭발하는 것이다.

마돈나·마이클 잭슨 등의 뮤직 비디오 감독으로 유명한 마크 로마넥은 별 이상이 없어 보였던 사이가 무섭게 변해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옮겨놓았다. 가상의 가족을 통해 사랑을 찾아보려는 사이의 고달픈 행보에 동점심마저 생길 정도다. 그의 사진관을 찾아오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코믹하게 그려내는 등 긴장의 완급 조절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스토커'는 할리우드 스릴러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사태의 원인을 오직 결손 가정에서 찾고 있는 것. 어린 시절 학대받고 성장했던 사이의 불우한 환경이 비극의 알파이자 오메가라는 설정이 새롭지 않다. 특히 사이가 그의 어두웠던 과거를 토해내는 마지막 장면은 장황하다. 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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