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오페라 '정조대왕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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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 몇 해 동안 초연된 창작 오페라는 '이순신''녹두장군''유관순''동명성왕''백범 김구와 상해 임시정부'등 위인전류가 대부분이었다. 화성오페라단(단장 김미미)이 지난 15~1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린 '정조대왕의 꿈'(작곡 김경중, 연출 박경일)도 제목만 보면 거기서 못 벗어난 것 같다. 하지만 이 오페라의 실제 주인공은 정조대왕(바리톤 유현승)이 아니다. 정조가 신하들과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짧게 처리될 뿐이다. 최루백과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봉담못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 여미를 등장시켜 서민의 애환과 사랑을 다룬 휴먼 드라마로 바꾸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옮길 터를 잡기 위해 봉담 연못가에 유숙할 때 꿈에서 여미가 들려준 애달픈 사연이다. 고려 의종 때 아버지를 잡아먹은 호랑이를 때려잡고 유해를 극진히 모신 화성 출신의 효자 최루백과 그의 약혼녀 여미의 이야기다.

이 작품이 위인전 오페라에서 탈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박덕규의 대본에서 나온다.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를 넘나들면서 효(孝)와 애국이라는 딱딱한 주제를 함축된 시어(詩語)와 운율로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으로 풀어냈다. 덕분에 작곡자도 풍부한 노래와 선율을 마음껏 펼쳐보였다.

관현악의 반주도 세심하게 다듬어 노래의 맛을 최대한 살려냈다. 대본 가사의 전달력도 뛰어났다. 3막에서 여미 엄마(메조소프라노 임미희)와 훈도령(테너 최진호)이 들려준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2중창은 오페라의 재미를 한껏 느끼게 해줬다. 소프라노 김희정(여미)과 테너 김철호(최루백) 콤비의 열정적이고 호소력 짙은 연기와 무대를 압도하는 발성이 돋보였다. 다만 군데 군데 애창 가곡이나 푸치니.베르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작곡법이 아쉬웠다. '정조대왕의 꿈'은 21~22일 오후 7시(토 오후 3시 추가)수원 경기도 문화의전당 무대에 오른다. 02-545-2078.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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