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에 담긴 카프카 창작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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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체코 태생의 독일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이야기 중심의 종래 형식에서 벗어나 현대인의 불안, 소외를 본격적으로 소설화했다는 의미에서다. 따라서 그의 대표작 『변신』 『성』(城)은 작품 전체가 하나의 상징으로, 그 해석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돼 왔다.

이 책은 카프카가 두 번이나 약혼하고 파혼했던 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낸 편지와 엽서 5백45통을 모은 9백92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1912년부터 1917년까지 거의 매일 한 통 이상씩 쓰여진 이 글들을 통해 우리는 카프카의 난해한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 편지들은 사랑을 고백하고 장밋빛 미래를 설계하는 연애편지가 아니다. 오히려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할 만큼 외롭고 처절한 창작의 고통을 담고 있다. "저의 생활 방식은 단지 글 쓰는 일만을 위해 준비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저의 소설을 위해 저 자신을 다 소비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는 토로에서 그가 진정한 작가로서의 고독을 위해 한 여자와의 행복을 포기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속기 타자수로서 낙천적이고 건강한 처녀인 펠리체는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듯 싶다. 심지어 "그 편지들은 아무런 의미도 담고 있지 않아요.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카프카가 직접 그은 편지의 밑줄까지 그대로 담은 이 책은 솔출판사가 한국 카프카학회와 함께 기획 중인 10권 짜리 카프카전집의 제 9권으로 그의 가족, 산책로, 그가 지낸 요양원 등 30여 점의 사진을 적절히 배치해 독자들이 카프카의 세계로 흠뻑 빠져 들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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