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入정원 > 수험생' 시대 재수생 비중은 되레 늘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고등학교 4학년생'. 요즘 일선 고교에선 재수생을 이렇게 부른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자마자 고3 교실이 술렁이고 있다. 본고사를 치르기도 전에 재수를 결심하는가 하면 입시학원에 문의 전화가 이어진다는 소식이다. 수능 가채점 결과 재수생 강세 현상이 두드러지자 나타나는 현상이다.

올 시험에 응시한 재수생은 17만9천여명. 전체 수험생의 26.2%로 지난해 수능보다 1%포인트 높아졌다. 벌써부터 차라리 재수하자는 재학생이 늘고 있다니 내년에는 재수생 비중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수능 응시생 가운데 재수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7학년도(96년 11월 수능 실시)까지 30%를 넘었다. 이 무렵만 해도 수험생이 대학 정원보다 많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재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뒤 일정 요건만 갖추면 대학 설립을 인가하고 대학 정원을 자율화하자 대학과 정원이 늘어 재수생이 줄고 그 비중도 낮아졌다. 더구나 올 수능부터 수험생보다 대입 정원이 많아져 이론적으로 수험생이 대학을 고를 수 있게 됨으로써 재수생 비중은 더욱 낮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 수능 결과가 재수생이 유리한 것으로 나타나 문제가 꼬였다. 오지선다형 객관식 수능은 집중적으로 연습하면 어느 정도 점수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이런 판에 수능의 난이도 조절마저 실패하자 재수를 고득점 기회로 여기는 재학생이 늘어나는 것이다.

너도 나도 재수에 뛰어드는 현상은 공교육과 대입 구조를 파행으로 모는 교육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경제적으로 비용을 치러야 한다. 재수는 사회 진출을 적어도 1년 늦춤은 물론 상당한 사교육비 부담을 요구한다. 한해에 들어가는 학원비만 몇백만원으로 대학 1년치 등록금과 맞먹는다.

재수는 우리나라 젊은이가 첫 직장을 잡는 입직(入職)연령이 27.2세로 선진국 평균(22.1세)보다 5년이나 늦은 데도 영향을 미친다. 병역의무 해결과 긴 학제가 큰 요인이지만 취업 여건이 좋지 않아 재학 도중 휴학하거나 졸업한 뒤 취업에 실패해 재수하는 경우도 가세하는 형편이다. 대입 재수생 당사자가 겪는 방황과 심리적 고통은 경제적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또다른 비용이다.

재수 바람은 학원 과외와 직결된다. 88년까지만 해도 입시학원과 영어학원은 전국적으로 1천개를 밑돌았다. 97년에 1만개를 넘어선 데 이어 올해 2만개에 육박했다(4월 1일 현재 1만9천8백57개).

대입 재수는 일본과 대만 등 동남아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인데 한국이 유별나다. 하지만 바람도 바람 나름이다. 한창 꿈을 꾸며 미래를 설계해야 할 젊은이들을 언제까지 문제풀이를 연습하는 재수로 내몰 것인가. 재수를 필수로 권하는 우리 사회, 이러다간 학제가 '6-3-4-4제'로 바뀔까 걱정된다.

jay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