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금메달리스트의 思父曲:태권도 김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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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남쪽 끝 제주도의 늦가을은 청명하다. 아직 겨울의 한기가 느껴지지 않는 이곳, 두 명의 여고생이 금빛 찬란한 메달을 걸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둘은 공교롭게도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바다 너머 제주도에서 전해온 그녀들의 '사부곡(思父曲)'을 찬찬히 들어보자.

"한달만 더 살아계셨더라도…."

12일 태권도 여고부 페더급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소원(17·충남체고)의 아버지는 지난달 17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날,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소원은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아버지는 혼수상태였다. 주위에서 "막내딸이 왔어요. 한번 눈 좀 떠 보세요"라며 울먹이자 아버지는 기적처럼 눈을 뜨고는 두손을 뻗어 소원을 꼬옥 안았다. 들릴듯 말 듯한 소리로 "미안하다"란 말을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세딸 중 막내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은 각별했다. 택시 기사·오피스텔 관리원 등을 전전하던 아버지는 소원이 초등학교 6학년 때 태권도를 한다고 하자 버럭 화를 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 끝까지 고집을 부리자 그때부터 아버지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간암 선고를 받은 것은 지난해 9월. 직장암이 간까지 전이돼 복수가 차는 간암 말기 상태였다. 아버지는 "다른 애들은 이미 성인이 돼 충격이 덜하겠지만 막내에게만은 말해선 안된다"며 이 사실을 숨겼다.

전국체전 도 대표 최종 선발전이 열린 지난 8월, 아버지는 대회가 열린 충남 대천으로 갔다. 걷기도 힘들 정도여서 가족들이 말렸지만 아버지는 "다신 못 볼 것 같다"며 진통제까지 맞으며 고집을 피웠다.

김소원은 "어서 가서 아버지 산소에 금메달을 놓아드리고 싶다"고 울먹였다.

제주=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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