農政 중심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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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농민들이 농축산물 수입개방 반대와 농가부채 해결 등을 촉구하며 어제 다시 거리투쟁에 나섰다. 전국농민대회의 목적은 대선을 앞두고 농민들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후보들에게 정치적 압력을 가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쌀농사 부진 등 농업환경이 밝지 않은 현실 앞에 농민들의 절박성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대립의 평행선만 긋고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농민들이 시위에 나선 데는 정부와 정치권의 농정 실패가 기실 뿌리깊게 자리잡고있다. 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이후 9년 동안 농어촌에 구조개선을 위해 50여조원을 투입해왔으나 농업경쟁력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뿐이다. 농가부채는 늘고 쌀값도 오르기만 해 국제시세와의 격차만 벌어졌다. 우리가 시간을 벌었다고 안심하고 있을 때 일본은 구조조정을 통해 농정의 틀을 완전히 바꿔버린 것과 대조적이다.

농정을 보는 정치권의 대응도 구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 진영은 이번에도 쌀 관세화 유예조치의 고수나 대폭적 농촌지원 확대 등의 약속을 여과없이 쏟아내고 있다. 농촌의 현실을 직시한 고뇌 어린 해결책과는 거리가 먼 인기영합용뿐이다. 농촌 구조조정이 되려면 쌀 수매가의 현실화가 이뤄져야 함에도 해마다 이를 인심 쓰듯 올려주며 미봉책에 앞장서온 것도 정치권이었다.

농정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일대 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다. 경쟁력을 갖추고 농업기반의 상실도 최대한 막아야 한다. 그러나 걱정은 농업인구의 급속한 노령화와 계속되는 이농(離農)으로 농촌의 적응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리투쟁도 좋지만 농민도 정부가 마냥 쌀값을 받쳐주는 정책을 유지할 수는 없으며 국제화·개방화가 대세임을 현실로 받아들여 적응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농정의 전환과정에 필요한 것은 갈등의 증폭이 아니라 진통을 서로가 생산적으로 껴안는 노력이다. 정부와 정치권도 농정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무게를 잡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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