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58>제104화두더지人生...발굴40년: 13. 부산 동삼동 패총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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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963년 모아(A.Mohr)부부의 부산 동삼동 패총 발굴 현장에는 특이한 인물이 있었다. 부부가 현장에서 한국 인부들과 대화할 때 통역 역할을 하고 긴요한 심부름 등 잡일을 맡은 20대 청년이었는데 이름은 들은 기억이 없다.

청년은 국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모 의과대학에 입시했다 낙방하자 생물학과에 다시 응시, 합격한 경우였다. 하지만 도저히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학업을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와 있던 차에 어떻게 수소문했는지 모아 부부와 연결이 돼 발굴 현장에 고용된 상황이었다. 현장 발굴작업이 고되기는 고된 모양이었다. 어느날 청년은 온다 간다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슬그머니 발굴현장을 떠나버렸다.

당시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3학년생이던 정영화(鄭榮和)·임효재(任孝宰) 등을 통해 들은 모아 부부 이야기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놀랄 만한 것이었다. 우선 자신들의 논문 준비를 위해 일본을 통해 사전 입수한 우리나라 선사시대 유적에 관한 정보가 놀랄 만큼 꼼꼼하고 세밀했다. 대학원생들의 연구비조로 2만달러라는 거금을 선뜻 내놓는 미국의 연구 지원 시스템도 입벌어지는 것이었다. 학문에 투자하는 미국적 스케일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부산에서는 발굴 조사에 한창 속도가 붙고 서울 교정에서는 슬슬 겨울 방학을 얘기할 무렵 전세계를 경악케 한 끔찍한 뉴스가 전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11월 22일 갑자기 라디오에서 긴급 뉴스로 미국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가 저격당해 사망했다는, 아나운서의 떨리는 음성이 쏟아져 나왔다. 정영화 교수는 쌀쌀한 바닷가 바람 속에서도 구슬땀을 흘리며 사방 2m 크기의 구덩이를 한참 파내려가던 현장에서 휴대용 라디오를 통해 뉴스를 전해들었다고 한다.

잘 알다시피 케네디 대통령은 텍사스주 댈러스를 방문, 오픈카를 타고 연도의 환영 인파에 답하던 중 오스왈드가 쏜 총탄에 맞아 서거했다. 미국과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밀접한 시기였던 만큼 국민들의 충격이 컸었다.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9·11 테러 이상의 사건이었지 싶다.

케네디는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젊고 세련된 이미지를 두루 갖췄었다. 더구나 뉴프런티어를 주창, 강한 미국의 이미지를 한창 부각해 놓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극적인 것은 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총탄을 맞은 남편의 머리를 감싸안고 "오, 노(Oh, No)"라고 절규하며 울부짖는 장면이었다. TV를 통해 전 세계에 중계된 이 장면은 지구촌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격변의 바깥 정세와는 상관없이 동삼동 발굴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후 마치게 됐다. 문제는 발굴조사가 끝나고 나서 터졌다. 전회에서 밝혔듯이, 모아 부부의 발굴이 사전 허가를 받지 않은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김재원 국립박물관장은 당초 간단한 시굴 조사로만 알아 허가를 내고 말고 할 경우가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본격적인 발굴이었던 것이다.

김관장은 자초지종을 김원룡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교수에게 따졌고 느닷없는 추궁을 당해 화가 난 김교수는 앞뒤 가리지 않고 모아 부부를 불러다 호통을 쳤다. 과정에서 서로 언성이 높아졌고 감정을 상하게 됐다. 결국 모아 부부는 연세대학교 손보기 교수를 찾아가 도움을 부탁,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유물을 정리할 연구실을 얻었고 서울대학교 연구실을 떠나갔다.

부부는 동삼동 패총 출토 유물을 정리하여 작성한 중간 결과를 66년 발표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발표 지면은 일본 천리대학교에서 간행되는 조선학보였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그런 논문을 실을 만한 고고학 잡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고고학 수준을 말해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부부는 발표한 글에서 동삼동 패총의 가장 밑바닥에서 수거한 목탄자료를 가지고 연대를 측정한 결과 자그마치 기원전 3천년 즈음, 지금부터 5천년 전에 조개무지가 형성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국내 유적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가 외국에서 발표된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리=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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