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드래곤' 작품성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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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된 '레드 드래곤'은 '양들의 침묵''한니발'과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로, 원작을 쓴 리처드 해리스의 '한니발 렉터 3부작'중 하나다.

그러나 '레드 드래곤'은 나머지 두 작품보다 먼저 책으로 출간됐고, 내용상으로도 나머지 두 작품보다 앞선 시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양들의 침묵' 대성공 이후 '한니발 렉터'라는 반(反)영웅 캐릭터와 그를 연기한 앤서니 홉킨스의 상업적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뒤늦게 영화화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레드 드래곤'이 과거에 이미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양들의 침묵'이 제작된 1991년보다 5년 전인 86년 마이클 만 감독이 '맨헌터'라는 제목으로 만들었다. 만은 '알리''히트''인사이더''모히컨족의 최후'등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할리우드 명감독. 그러나 '맨헌터'는 흥행에서 참패했다.

감독의 명성으로 보아도 '맨헌터'를 그저 그런 B급 영화로 치부해 버리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맨헌터'의 제작자가 '양들이 침묵'부터 '레드 드래곤'까지 세 편의 제작을 도맡은 디노 드 로렌티스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같은 제작자가 같은 원작을 가지고 두개의 영화를 만든 것은 결국 돈을 벌겠다는 의도로밖에 설명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구심은 시리즈의 둘째편인 '한니발'이 개봉되는 시점부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어 왔다. '맨헌터'의 팬을 자처하는 이들은 철저한 상업적 계산에서 만들어진 '레드 드래곤'이 '맨헌터'의 존재와 작품성을 부정하는 것을 비판하고 나섰다. 반대로 앤서니 홉킨스가 연기하는 한니발 렉터에 매료된 이들은 '레드 드래곤'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데 앞장서 왔다. 논란의 주제는 '얼마나 원작을 충실히 영화화했느냐'였다.

'맨헌터'의 경우 만이 참여하기도 했던 '마이애미 바이스' 등 80년대 TV 형사시리즈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반면 '레드 드래곤'은 원작이 가지고 있던 아우라(aura:고유의 향취)를 잘 살려냈다는 것이 옹호파의 주장이다. 반면 반대파는 '레드 드래곤'이 할리우드의 '욕심'말고는 보여준 게 없다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이러한 찬·반론은 '레드 드래곤'이 개봉될 즈음, 두 영화에 참여한 배우 및 제작진간의 설전으로 이어졌다. '레드 드래곤'의 감독 브렛 래트너는 "'맨헌터'는 아무도 보지 않은 영화다. 일주일 상영되고 간판을 내린 작품이었다"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맨헌터'에서 한니발 렉터를 연기한 브라이언 콕스는 "'맨헌터'야말로 걸작이다. 걸작을 리메이크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물론 이런 논란은 '레드 드래곤'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잦아들긴 했다. 하지만 '재창조'라는 의미의 리메이크(remake)가 아니라, 단지 상업적 이유로 같은 제작자가 같은 원작의 영화를 다시 만드는 것은 어딘지 뒷맛이 개운치 않다. 특히 먼저 만들어진 영화에 대해 '레드 드래곤'의 제작진이 비난을 퍼부은 것은 모양새가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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