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정부에 물고문 검찰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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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수사기관 물고문 악령이 되살아났다. 서울지검 강력부의 피의자 조사 과정에서 물고문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대검 감찰부장은 8일 "피의자 조사 과정에 물고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뒤늦게 물고문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1987년 박종철군 물고문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뒤 15년이 지났는데도 계속 물고문이 자행되고 있었다니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물고문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는 야만행위다. 강제로 코에 물을 들이붓거나 머리를 물통 속에 처넣어 호흡을 못하도록 하는 인간성 말살 방법이다. 일제의 잔재로 한번 경험한 사람은 물통이나 욕조만 봐도 공포에 떨 정도로 고통이 심하다고 알려져 있다.

물고문하는 검찰은 더이상 검찰이 아니다. 최소한의 자존심이나 양심마저 팽개친 막가파식 행태다. 물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내면서 어떻게 사회 정의를 입에 올릴 수 있는가.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강조해온 국민의 정부에서 검찰의 물고문 시비는 정말 국가적 불행이고 수치다.

피의자가 처음 물고문당했다고 주장했을 때까지도 '인권 신장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대통령의 나라에서 설마 …'하며 믿기지 않았다. 아직도 관련 수사관들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대검 감찰 책임자가 발표한데다 당시 물에 젖은 피의자의 상반신을 보았다는 목격자 진술도 있어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됐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엄중 문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강력사건 수사 방법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다시는 물고문이나 강압수사·가혹행위 시비가 없도록 해야 한다.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한 검찰조사 단계의 변호인 면담·입회 허용도 검토해야 한다. 또 원활한 수사를 위해 참고인 강제 구인제와 허위진술을 처벌할 수 있는 사법방해죄도 함께 신설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과학수사를 위한 시설과 장비를 대폭 보강하고 강력수사 전문인력 양성의 제도화도 필수적이다. 그리고 국민 기본권 옹호에 대한 검사 개개인의 의지와 인식이 먼저 바뀌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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