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0일 세계과학의 날]말로만 '과학韓國' 실천이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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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5면

1999년 11조9천억원이었던 국가 총 연구개발비는 2002년 19조원으로 늘었다. 99년 6% 내외였던 정부출연 연구기관·국공립대학의 여성 과학자 비율은 올해 말까지 10% 선으로 높아진다. 이를 위한 여성 채용 목표제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과학·공학 윤리를 가르치는 대학은 10여개에 불과하다. 대학에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학제적 연구는 여전히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연과학 간의 벽도 아직 높다.

99년 부다페스트 세계과학회의 이후 달라진 한국의 과학계 실상 중 일부다. 외형적인 성장은 눈에 띄게 잘 나타나고 있으나 질적 고도화와 다양화는 더딘 걸음임을 알 수 있다. 과학기술을 여전히 경제 발전을 위한 도구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탓이다.

부다페스트 세계과학회의가 과학기술의 순기능을 극대화하고, 역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 행동지침으로 권고한 각 조항은 우리나라에선 '지키기 어려운 목표'인 것이다.

행동지침은 혁신정책·과학연구·과학교육·과학윤리·과학문화·참여확대·지구환경 등 일곱가지 주제별로 구체화해 제시했다. 이를 각국이 후속 조치를 통해 개선해 나가도록 세계 과학회의는 주문했었다. 그 회의가 있은 지 3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나라는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아직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과 집행구조·교육·과학문화 확산 등 각 분야에서 개선해야 할 일이 산처럼 쌓여 있는 실정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송성수 박사는 "우리나라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 문화적인 문제를 너무 소홀히 다뤄왔다"며 "세계과학회의의 권고에 따라 종합적인 과학 확산 풍토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송박사는 지난해 '세계과학회의 후속 조치를 위한 국내 과학기술 활동의 점검'작업에 참여했었다.

세계과학회의 선언 제37조와 의제 55조인 '과학기술 정책의 위상 및 연속성'을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2000년 과학기술기본법을 만들고, 과학기술 혁신 5개년 계획, 과학기술 기본계획 등을 지속적으로 수립했다. 과학기술 정책을 종합 조정하기 위한 과학기술장관회의(의장 경제부총리)를 99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대통령)로 격상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위상 정립 문제는 계속 불거지고 있다. 또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실질적인 조정보다 '통과위원회'로 보는 시각이 많다. 국가 총 연구개발비 중 정부의 비중은 25% 내외로 선진국보다 10%포인트 정도 낮다.

과학문화 확산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과학문화재단이나 일부 학회에서 산발적으로 이뤄질 뿐 체계적이고 국민 축제식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산도, 정부의 의지도 빈약하기 때문이다.

과학 교육의 역할과 작용을 명시한 세계과학회의 선언 제10조와 34조의 경우도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다. 이 조항에 따라 대학생들이 '인간 발달과 과학적 소양을 갖춘 시민양성'과 관련한 교양과목을 수강했느냐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설문조사에서 5점 만점에 2.7점이 나왔을 뿐이다.

박방주 기자

bpark@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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