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강제병합 100년 반성과 사죄 … 말보다 행동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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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어제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가 36년간의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고, 한국민에게 사죄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비록 우회적이지만 식민지 지배의 강제성을 인정한 것은 과거에 비해 진전된 인식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징용 피해자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외면하는 등 미흡하고 아쉬운 대목이 없진 않지만 나름대로 성의 표시는 했다고 본다. 담화에서 보여준 일본 정부의 과거사 극복 의지가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의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

담화에서 간 총리는 “한국민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며 “식민지 지배가 가져다 준 많은 손해와 고통에 대해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심정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에서 표명된 사과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식민지 지배의 강압성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점은 진일보한 자세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조선총독부를 거쳐 반출돼 일본 정부가 보관 중인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도서를 가까운 시일 내 반환하겠다고 밝힌 것은 의미 있는 조치로 보인다. 문화재 반환이란 측면에서 보면 사필귀정(事必歸正)이고, 당연한 조치지만 양국 간 현안 중 하나가 해결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일본 궁내청에 소장된 한반도 유래 도서는 조선왕실의궤 81종 167책 등 조선총독부가 기증한 84종 282책, 유교 경전과 의학·군사서적 38종 375책, 경연(經筵)용 서적 3종 17책 등 조선 시대의 각종 희귀본을 망라하고 있다. 도서 반환이 각종 문화재 반환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얼마 전 한·일 지식인 1000여 명은 100년 전 강압적으로 체결된 한·일 병합조약은 불법이고, 원천무효라고 선언하고, 이 점을 담화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간 총리가 담화에서 조약 자체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그 결과에 대해서만 사죄한 것은 뿌리는 덮어둔 채 곁가지만 건드린 꼴이라는 비판이 있음을 일 정부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간 총리의 말마따나 한·일 양국은 앞으로의 100년을 바라보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그 토대는 지난 100년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며, 이는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회성 립서비스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는 담화에서 밝힌 일본 정부의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가 구체적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지켜볼 것이다. 독도나 교과서 문제, 일 정치인의 망언(妄言) 때문에 한·일 관계가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속절없이 굴러 떨어진 경우를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양국은 지난 100년의 불행을 딛고 우애(友愛)의 100년을 열어감으로써 평화와 번영의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앞당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