餘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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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자그마한 카페에서 나이 50을 갓 넘은 여주인이 포도주를 따르면서 말했다. "잔을 가득 채우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손님은 그러지 마세요. 잔의 3분의 1씩만 채워드릴 터이니 여유있게 들면서 맛을 보세요. " 그녀에 따르면 잔에 여백이 있어야 더 좋은 포도주 맛을 볼 수 있단다. 잔을 천천히 돌리면 여백의 공간과 표면에서 포도주가 공기와 접촉해 입맛 당기는 향을 발산한다. 이 여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잔을 채워달라고 조른다면 그야말로 포도주 맛을 모르는 사람으로 지목받기 쉽다.

재일 화가 이우환씨의 작품은 보통의 문외한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서울의 몇몇 이름 있는 건물에 걸려 있는 그의 작품은 '그림을 그리지 않은 그림'이라 해야 옳다. 희거나 검은 바탕의 캔버스에 덩그렇게 점 하나 찍어 놓은 그림도 있다. 그게 무슨 작품일까. 그는 지난달에 번역 출간된 '여백의 예술'에서 "작품이 무한성을 띠게 되는 것은 여백으로서의 공간의 힘에 의한다"고 적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여백이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길이다. 서로 침투하기도 하고 거절도 하는 다이내믹한 관계를 만들어 낸다.

일부 대학에서 젊은 교수들을 중심으로 연구되고 있는 '여백 교육'이 관심을 끌고 있다. 모든 교과목으로 꽉꽉 채워진 교육 내용이 학생들을 질식시키고 있으며 그들에게서 포부도 없어졌다. 오로지 암기 위주의 배움에만 신경을 쓰는 교육이 문제아를 대량 배출한다. 이런 아이들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여백을 제공하는 교육을 할 수 없을까 하는 것이 그들의 연구 테마다. 어떤 문제를 자율에 맡겨 보기도 하고 수없이 많은 의문을 제기토록 하며 스스로 탐색하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대안교육·환경교육도 여백교육의 한 분야로 등장했다. 포도주 잔의 빈 공간에서 발산되는 향기처럼 또는 최소한의 터치로 주위의 공간에 무한감을 주는 이우환 화백의 그림처럼 여백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훌륭한 잠재력이 발견되기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몇년 전에는 Blankism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예술가 몇몇 사람들이 이른바 여백주의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간'의 blank는 '여백'과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백은 다사다난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편안과 위안을 준다. 여백에 관심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생활에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대선을 앞두고 독기가 서린 정치인들에게도 여백이 있었으면 좋겠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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