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매섭게 살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3면

현대건설이 매섭게 살을 빼고 있다. 심현영(沈鉉榮)사장은 21일 전 임원의 사표를 받은 데 이어 22일엔 부사장급 본부장 4명과 사장 특보 3명을 퇴진시켰다. 하위직급에 대한 감원도 예정돼 있다.

지난해 출자전환 이후 영업실적이 몰라보게 좋아졌지만 구조조정을 계속해야 할 정도로 안팎의 상황이 그렇게 만만치 않은 현실을 반영한다.

◇몸집 줄이기=현대건설은 임원 1백45명 가운데 30%를 줄이고 차장급 이상 간부직원을 2백여명 감축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현재 4천1백85명을 연말까지 3천9백명 선으로 줄여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 회사 손광영 상무는 "조직을 슬림화해서 경쟁력을 높이고 안정된 경영기반을 갖추기 위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1999년 말 유동성 위기에 몰렸을 당시 7천1백명의 임직원이 절반 가까이로 줄어드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沈사장이 취임하던 지난해 5월 1인당 생산성(직원수 대비 매출액)이 9억원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말 15억원으로 늘어났으며 연말께는 16억원에 이르러 국내 최고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살빼기에는 지난달 채권단과 沈사장 간의 알력과 대북지원 연루설 등으로 어수선해진 조직을 추스르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회사 안팎에서는 보고 있다.

여기에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 "실적개선을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고 요청한 주문도 크게 작용했다.

◇영업구조 여전히 불안=이 회사의 상반기 실적 자료를 보면 사정이 괜찮다. 상반기에 1천5백3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고 8백9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4년 만에 낸 흑자다.

당기순이익 가운데 특별이익이 10%밖에 안돼 영업실적이 점차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4∼5년간 돈을 벌어 이자도 갚지 못했을 정도였다.

99년 말 4조5천억원이었던 차입금이 현재 1조7천억원으로 줄어든 것이 영업 수지를 개선하는 효자가 됐다.

다만 영업구조와 건설시장 환경이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점이 걸린다. 상반기에 영업이익을 많이 내긴 했지만 매출액이 크게 줄었고 사업이 주택에 치우치고 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회사는 상반기에 2조5천3백56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지난해 같은 기간(3조1천3백94억원)보다 크게 줄었다.

<그래프 참조>

다른 건설사가 안고 있는 골칫거리이기도 하지만,앞으로 매출을 발생시킬 만한 공사가 많지 않은 것은 더 큰 고민이다.

지난달 말 현재 수주 잔고(수주해 놓은 공사를 금액으로 환산한 것) 18조6천억원 가운데 매출을 일으키고 있는 공사는 9조9천억원어치다.

이밖에 시공권을 확보한 재건축·재개발 사업만 6조원이 넘으나 5년 이내에 착공할 공사가 별로 없다.

재무구조는 괜찮은 편이다. 내년 상반기 만기가 되는 3천억원 규모의 신속인수 회사채 상환을 둘러싸고 최근 沈사장과 채권단이 갈등을 빚은 것은 상황을 심각하게 보지 않는 채권단과 인식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현대는 자금에 문제가 별로 없다"고 전제하고 "자금지원은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돈을 벌어 갚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삼성증권 이동섭 수석연구원은 "전반적으로 재무구조가 좋아졌지만 이라크 등 해외 미회수채권이 여전히 회계장부를 주름지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성근 기자

hsg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