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억울…여하튼 죄송합니다' 초상집 된 서귀포시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그래도 하느라고 했는데…여하튼 죄송합니다."

▶ '부실 도시락'

몇일 동안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부실도시락 파문'의 진원지인 제주도 서귀포 시청은 13일 오전 흡사 초상집 분위기다. 전화를 받는 공무원들의 목소리는 맥이 빠져 있다.

방학중 결식아동 급식이행사업의 주무부서였던 사회복지과 담당과장이 11일 전격적으로 직위해제됐고,시장이 직접 사과문까지 발표하는 초유의 일까지 겪어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침울한 얼굴이었다.

일부는 "일주일치 식단중 딱 하루였고,언론에서 공개한 사진도 먹다가 남은 상태의 사진이어서 더 초라하게 보이는 일종의 과장 보도였다"는 항변을 하기도 했다.

부실도시락 파문은 인터넷의 위력으로 불거졌다. 처음 문제를 서귀포시청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탐라자치연대는 5~6일전 한 시민의 제보를 받았다. 문제의 도시락 사진과 함께 내용을 들은 이 시민단체는 7일 서귀포시청을 찾아가 개선을 촉구했다.

하지만 예산과 배달문제 등 답답한 답변만 듣고 나왔다. 이 단체는 '부실도시락'문제를 결국 8일 인터넷에 띄웠고,'자극적인'사진은 네티즌들을 흥분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서귀포시는 사태가 이렇케 커질 줄 몰랐다.

주말인 8,9일이 지나 월요일인 10일이 되더니 네티즌들은 각종 포털사이트를 돌며 이 사실을 알렸다. 물론 항의글이 빗발쳤고 11일에 이어 12일에도 서귀포시청 사이트가 다운,인터넷 접속조차 안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당초 서귀포시와 계약을 맺은 구내식당 업주 김모(40)씨는 11일 일주일치 식단표를 보여주며 "일부 먹다가 남은 내용물이 담긴 도시락을 마치 처음부터 제공한 것처럼 호도했다.일방적으로 매도당해 억울하다"고 하소연했지만 네티즌들의 집중포화를 비켜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강상주 서귀포시장 역시 기자들에겐 "먹다 남은 도시락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아 다녀 과도한 흥분을 야기하고 있다"는 볼멘 소리를 했지만 네티즌들의 흥분을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사태를 조기에 진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강 시장은 급기야 11일 사과문을 발표하는 한편 오후엔 인사위원회를 열고 해당 과장을 직위해제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알려지자 이젠 신문.방송이 앞다퉈 이 문제를 보도하는 등 파문은 더 확산됐다. 이 와중에 '서귀포시'를 '제주시'로 오인한 일부 네티즌들은 제주시청 홈페이지에 항의글을 게시,"우리와 관련없다"는 해명을 제주시가 해야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12일 서귀포시는 구내식당과 계약을 해지하고 도시락전문업체와 새로 계약했다.개인택시를 이용,결식아동의 가정으로 도시락을 배달하는 방법도 바꿔 동사무소로 도시락을 배달하면 공무원들이 직배(直配)하는 방식으로 바꿔 배달료 비용도 줄였다.물론 식단을 대폭 개선하는 내용의 개선책도 내놨다.

네티즌들의 집중포화가 시작된 게 10일인 점을 감안하면 이틀만의 신속한 조치였다. 보건복지부가 실태조사에 들어가는 등 후속조치도 잇따르고 있다.서귀포만이 아니라 전북 군산에서도 부실도시락이 확인돼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13일엔 국회의원들도 제주로 내려와 현장조사를 벌였다. 인터넷으로 불거진 이슈가 제대로 된 정책을 끌어낼 수 있을 지 두고 볼 일이다.

제주=양성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