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해법 찾을 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미국 회사인 게 천만다행이다. 한국의 ‘대기업 때리기’에 걸렸다면 벌써 시체가 됐을 것이다. 아이서플라이가 공개한 애플의 아이폰 3G 제조원가는 16GB 모델 기준으로 179달러(약 20만원)다. 애플은 이 제품을 중국에서 만들어 전 세계에 60만원 이상에 판다고 한다. 3배에 가까운 폭리(暴利)다. 영업이익률은 삼성전자의 두 배인 27%이고, 지난 2분기에 5조원을 벌었다. 그런데도 이런 애플을 비난하는 미국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은 없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재단을 통해 통 큰 기부를 하기로 유명하다. 반면 스티브 잡스는 기부에 별 관심이 없다. 개인 차원에서 해마다 15억원 정도의 기부에 그친다. 그런데도 “애플은 사상 최대 실적을 만끽하는데, 중소기업과 서민만 힘들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미국에선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조차 듣기 힘들다. 오히려 “스티브 잡스의 공식 연봉은 1달러인데, 개인적으로 그만한 액수를 투명하게 기부하는 것도 대단하다”는 쪽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캐피털 회사를 찾은 이후 열흘 넘게 대기업 비난이 꼬리를 물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의 주장이 모두 틀린 건 아니다. 고환율-저금리-재정 확대의 혜택이 대기업에 편중됐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일부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쥐어짜 비용을 떠넘긴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회적 비난은 명백한 사실에 근거할 때에야 정당성을 가진다. 캐피털 회사의 금리나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확대에 대한 통계부터 잘못 인용되는 경우가 흔하다.

대기업은 가해자, 중소기업은 피해자라는 도식(圖式)도 흔들리고 있다. 대기업에 큰소리 치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다. 삼성·LG는 LED용 핵심 부품을 만드는 S사에 “우리에게 물량을 더 많이 배정해 달라”며 목매고 있다. 이 회사는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핵심 기술은 아예 특허조차 내지 않는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또 다른 S사는 국내 대기업이 횡포를 부리자 미국·일본으로 생산물량의 절반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 뛰어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자 대기업들이 굽실거린다.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이런 중소기업들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 남들이 다 만드는 부품을 갖고 ‘단가(單價) 후려치기’ 비난에 끼어드는 중소기업이 얼마나 많은지 짚어볼 일이다.

양극화는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다. 다행히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용등급이 눈에 띌 만큼 도약한 몇 안 되는 나라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재조정할 여력이 생긴 셈이다. 여기에다 중국의 생산비용이 급상승하면서 국내 기업의 투자가 ‘U턴’할 조짐도 뚜렷하다. 어느 때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상생(相生) 해법을 찾을 적기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비난이 아니라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에서 ‘친(親)서민’으로 돌아서자 당국자들은 몇 달 전 ‘상생협력 우수회사’로 선정한 기업들을 흉악범마냥 취급하고 있다. 미국이 애플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