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줄기를 키우려면 뿌리부터 보살피라 : "청계천 살리자" 세종때도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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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청계천 복원을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복원을 함으로써 도시 중심에 생태 공간을 조성하자는 명분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교통 혼란은 어찌 할 것이며 그 주변에서 생계를 꾸려가던 사람들의 '우린 어쩌란 말이냐'는 항변도 충분히 이유가 있다.

세종 26년 집현전 수찬 이선로는 이렇게 개천(청계천의 본 이름)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근자에 성 안 개천에다가 냄새나고 더러운 물건을 버리는 일이 잦아 개천 물이 몹시 더러워졌는데, 그런 쓰레기를 버리는 일을 금지시켜 명당수를 청정케 하라"는 것이었다. 이 제안은 세종의 관심을 끌었다.

풍수에서 명당수의 맑고 더러움은 거기에 살고 있는 주민의 심성을 대변한다고 하여 매우 중시하는 부분이고, 이 점 이선로의 제안과 세종의 호의적 관심은 너무나 당연했다. 문제는 풍수를 현재의 시점에서 미신이라 생각한다는 점이다.

조선의 역대 임금 중 가장 과학자인 분이 누구였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저없이 세종대왕을 떠올릴 것이다.

가장 과학적인 임금이 단지 미신에 불과한 풍수를 믿었다면, 풍수는 과학인가 미신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풍수는 당시로서는 의심의 여지없는 지리과학이었다.

그러나 이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집현전 교리 어효첨을 비롯한 중신들은 현실론을 들어 명당수 정화론을 매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서울의 명당수는 어차피 더럽혀 질 수밖에 없는 것인데, 어찌 풍수와 같은 요망한 술법 때문에 개천의 맑음을 주장하는가라는 것이 현실론자들이 요지였다.

나는 그 때 명당수를 맑게 하는 어떤 방법을 모색하고 그를 시행했다면 오늘의 서울은 세계적인 생태 도시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당시는 봉건왕조 시대였고 따라서 토지 수용도 간단했으려니와 노동력의 공급도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쉬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로 인해 고역을 치를 백성들조차 내몰라라 하는 멍청이는 아니다. 영웅의 출현은 백성의 재앙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건 전쟁이 아니다. 줄기를 키우려면 뿌리부터 보살피라고 했다. 청계천을 복원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이 깨끗한 물의 지속적인 공급이다. 그를 위해서는 청계천으로 유입되는 지류들부터 정화해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일거에 공사를 일으켜 수많은 폐단이 눈에 보이는 듯한 밀어붙이기 식 복원보다는 조그만 지천들부터 아름답게 가꿔 그 결과를 보아가며 복원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지금 청계천 지류인 정릉천은 어린이들이 물에 들어가 놀 정도로 맑음이 나아졌다.

청계천 지류는 아니지만 양재천의 수질과 주변 생태계의 회복 속도는 또 하나의 증거를 제시한다. 뿌리인 지천부터 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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