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 관련업계 시너지 효과를]애니메이터 學位만 있고 교육 부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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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대학과 업체=전국의 만화애니메이션 관련 학과는 현재 4년제 57개·3년제 5개·2년제 52개 등 1백14개에 달한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 수 있는 설비가 제대로 갖춰진 학교는 10여개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비가 부족한 학교에서는 복잡한 공정이 필요한 애니메이션 수업 대신 간편한 만화 관련 수업을 늘리고 있다는 것이 한 교수의 고백이다. 학생들이 충분한 제작 경험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6월 초 문화콘텐츠 업체 대표 1백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4.1%가 신입사원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은 대학과 문화산업 현장의 괴리를 잘 보여준다.

물론 대학이 오로지 취업을 위한 전단계여서는 안될 것이다. 대학에서만 가능한 안목 넓히기와 진취적인 실험이야말로 애니메이션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밑거름인 만큼 이들의 순수성과 실험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부실한 교육과정과 장비를 가진 대학은 얼치기 애니메이터 양산기관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와 관련해 계원조형예술대학교의 경우 아예 입학 면접관으로 업체 관계자를 초빙, 업체에서 활용 가능한 잠재능력의 보유자를 학생으로 선발한 뒤 학교와 업체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어서 눈길을 끈다.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한창완 교수는 "모든 학교가 똑같은 커리큘럼과 똑같은 장비를 갖추려고 하기보다 '이 학교는 클레이메니션, 저 학교는 플래시'하는 식으로 장비 및 교육내용을 특화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업체와 방송사=TV시리즈의 경우 국내에서 22분짜리 한 회분을 제작하는 데 1억원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분량의 프로그램을 일본에서 사오면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4백만원대면 가능하다.

시장 논리대로라면 물어보나마나 사오는 게 이득이다. 그러나 문화산업일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국민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아무리 힘이 들어도 키우고 지켜내야 하는 것이 문화산업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방송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98년 시행된 국산애니메이션 TV의무방영제는 전체 방송시간 중 일정 시간을 의무적으로 국산작품으로 편성하고 이를 점점 늘려간다는 총량제 개념이었다. 그 결과 수많은 국산 애니메이션이 제작됐다.

그런데 2000년 방송법이 개정됐다. 대상 시간이 전체 방송시간이 아니라 전체 애니메이션 방송 시간으로 바뀌었다. 의무적으로 방영해야 할 창작 애니메이션 방송시간은 크게 줄어들었다.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 등 관련단체에서는 서명운동에 나서며 반발하고 있지만 방송사에서는 "편성권은 방송의 독립적 권한사항"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영국의 사례를 연구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보면 어떨까. 90년대 영국의 민간채널 채널4는 학생들이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매일 TV에 방송했다. BBC도 젊은 감독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중 하나가 피터 로드와 닉 파크였다.

그들은 지금 아드먼 스튜디오를 세우고 '월레스와 그로밋'과 '치킨런'을 만들어 영국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문화산업의 주체로 성장했다. 투자 없이, 애정 없이 이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정형모 기자

매년 5천명에 가까운 애니메이션 인력이 대학에서 배출된다. 이들은 업체로 들어가거나 스스로 감독이 되어 작품을 만든다. 그리고 방송사는 업체들이 만든 작품의 주된 소비처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가 그리 매끄럽지 못하다. 갈등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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