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는 자연스러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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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3면

오페라의 극적 전개방식으로 말하자면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전쟁과 평화'는 '평화와 전쟁'이라고 해야 옳다. 국립오페라단이 6일 현충일에 막을 올린 이 작품의 주목하는 이유는 국내 초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작품의 특성상 관현악이 풍부하고 화려한 데다 주역과 조역을 합쳐 23명이나 되는 독창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독창자 중에는 '두 얼굴'도 10명이나 된다. 예컨대 1막 무도회에선 하인으로, 2막 전쟁 장면에선 부관으로 등장하는 식이다. 게다가 대규모 합창단이 모스크바 시민과 프랑스·러시아 군대 역할을 맡아야 한다. 전쟁 장면을 무대 위에서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도 관심거리였다.

5일 시연회에 출연한 소프라노 이현정(나타샤)·테너 이칠성(피에르 백작)·베이스 변승욱(쿠투조프 원수)의 개성있는 음색과 자연스러운 연기, 국립오페라 합창단의 앙상블이 돋보였다. 최승한 지휘의 코리안심포니는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러시아적 색채를 저력있게 표현해 오페라의 무게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충분한 연습을 거친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게오르기 안시모프의 연출은 장면과 장면 사이의 연결이 부자연스러웠다. 4시간20분이 넘는 대작을 2시간40분으로 줄이는 데 급급한 탓으로 보인다.1막과 2막 간에 별다른 무대 변화가 없어 무도회의 화려함과 전쟁의 참혹상을 대비시키는 극적 감동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계단식 회전무대와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평면 세트는 무대전환 시간을 절약했을지 모르나 오페라의 재미를 반감시키고 말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오페라에서 시각적 측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무대의상도 장교 복장 등에서 충분히 멋을 부릴 여지가 있었지만 실제는 볼품이 없었다.

무대 막에 전쟁 장면을 담은 그림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잘 들리지 않는 우리말 가사 때문에 관객들은 자막 읽기에 바빴다. 오페라를 이끌고 간 것은 프로코피예프의 음악 자체였다. '전쟁과 평화'는 많은 성악가를 출연시킬 수 있기에 신인 발굴의 좋은 기회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국내 초연이라는 기록만큼이나 성의있는 무대도 중요하다.

국립오페라단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무대라 기대가 컸던 탓인지 그만큼 실망감도 큰 게 사실이다. 차라리 오페라 무대에 본격적으로 올리기에 앞서 콘서트 형식으로 초연하는 게 더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9일까지 오후 7시30분, 일 오후 4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6-5282.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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