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나면 즉각 진료기록부 확보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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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국내 법조계에도 전문화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국내 최초로 의료 전문 법률서비스를 표방하고 개설한 대외 메디컬로(對外 Medical Law)법률사무소가 대표적 사례다. 대표 변호사인 전현희(37) 변호사는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치과의사 경험을 한 의료인 출신.

이 법률사무소는 의료전문을 표방하는 변호사 5명이 의료분쟁 해결, 의료관련 정책 및 법률의 자문에 참여할 예정이다.

"억울할수록 냉정해야 합니다. 폭력 등 실력행사보다 소송과 같은 법적 대응이 바람직하지요. "

전 변호사는 의료사고가 환자에게 결코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아님을 강조했다. 최근 법원이 상대적 약자인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의료사고시 과실 없음에 대한 입증 책임을 의사에게 묻는 경향을 보임에 따라 환자의 승소율이 절반을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소송도 급증하고 있다. 서울지방법원에 따르면 1996년 82건에서 97년 96건, 98년 1백4건,99년 1백21건, 2000년 1백60건으로 가파르게 늘고 있다.

"과실을 고의로 은폐하려는 의사에 대해 법률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변호사도 최신 의학지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수년 전 자궁 물혹을 복강경으로 제거하는 시술을 받다 복막염과 장(臟)유착이 생긴 가정주부 A씨가 대표적 사례다. 시술 도중 의사의 실수로 자궁에 구멍이 뚫린 것이 문제였다. 부작용 때문에 장을 잘라낸 A씨는 배에 비닐 주머니로 만든 인공 항문을 부착해야 했다.

신혼주부로 아기를 갖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복강경 시술을 받았던 A씨에겐 청천벽력같은 일이었다. 결국 남편과 이혼해야 했던 A씨에게 병원은 원래부터 갖고 있던 장 유착이 문제였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물혹 제거 시술 전 검사에서 장 유착이 발견됐다는 것.

그러나 전 변호사는 진료기록부와 수술기록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A씨의 장 유착이 복막염과 무관한 난소 부근 장 유착이었으며 문제가 된 장 유착은 의사의 복강경 조작시 과실로 인한 것이라는 점을 밝혀냈다. A씨는 최근 법원으로부터 약 1억원 정도의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의료사고시 진료기록부는 가능하면 빨리 확보해야 합니다. 의료법 20조 1항에 따르면 환자나 보호자가 진료기록부의 열람이나 사본의 교부를 요구할 경우 의사는 이에 응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A씨의 경우도 미리 확보한 진료기록부가 의사의 과실을 찾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감정적인 소송을 남발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불가항력적으로 나쁜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턱관절 수술을 받은 후 숨진 B씨의 가족은 수술을 잘못해 출혈로 숨졌다며 의사를 고발했다. 수술 부위가 불그스름하게 부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변호사(의사측 대리인)는 환자의 사인이 수술후 정상적으로 올 수 있는 혈관부종을 수술 실패로 오인해 의사에 대해 고함을 치며 흥분할 때 생긴 출혈로 기도가 눌려 사망한 질식사임을 밝혀냈다. 결국 의사는 검찰에서 무혐의 결정을 받았다.

환자의 입장에선 의사의 과실이 있는지 여부나 소송의 실익이 있는지에 대해선 전문가의 조언이 필수적이다. 실제로 의료사고 상담 중 소송의 실익이 있는 것은 3~4%도 되지 않는다는 것. 함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오히려 더 금전적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전 변호사는 "환자의 체질 등 불가항력적 결과에 대해서도 의사에게 책임을 물린다면 소극적 진료를 유발할 수 있다"며 "의료사고시 환자든, 의사든 어느 쪽도 억울한 피해를 당하지 않고 공정하게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02-3477-2131.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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