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업씨 비리 의혹 관련 핵심인물들 출두 앞두고 잇단 잠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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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차남 홍업(弘業)씨의 비리의혹에 연루된 핵심 피의자나 참고인들이 검찰 출석을 앞두고 잇따라 잠적하거나 와병을 이유로 소환에 불응, 검찰수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권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된 홍업씨의 친구 김성환(金盛煥·전 서울음악방송 회장)씨가 홍업씨의 이권개입 여부에 대해 입을 다물어 가뜩이나 수사가 힘겨운 판에 관련자들의 잇따른 잠적으로 검찰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검찰 일각에서는 수사 관련자들이 비슷한 시기에 잇따라 잠적한 것은 수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하려는 배후 세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홍업씨 돈세탁을 하고 최근 '국정원 5억원?' '후광 돈 확인' 등의 메모를 적어 홍업씨 의혹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병호(金秉浩)전 아태재단 행정실장이 이날까지 닷새째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32억원을 차명계좌로 관리해온 홍업씨 친구 유진걸(柳進杰)씨는 심장질환을 이유로 20일째 병원에 입원 중이다.

柳씨는 병원에서 더이상 입원이 필요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는데도 퇴원하지 않은 채 소환에 불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김성환씨와 10억원대의 돈거래를 한 것으로 드러난 홍업씨 대학 후배 李모(P프로모션 대표)씨도 약 열흘 전에 잠적했다.

李씨는 당초 김성환씨와의 돈거래 문제로 수사 초기 두차례 받았던 검찰조사에서 별다른 혐의가 포착되지 않았지만 金씨와의 추가 돈거래가 발견되면서 거래 규모가 10억여원으로 늘어나고, 특히 李씨는 홍업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이권에 개입하며 기업체들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가 일부 드러나자 이달 중순 검찰 수사망을 피해 돌연 자취를 감췄다.

李씨는 김성환·유진걸씨 등과 함께 홍업씨의 최측근으로 홍업씨 주변에서 비자금 수십억원을 조성, 관리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어 李씨 신병확보는 이번 수사의 핵심 관건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또 김성환씨와 수억원의 금전 거래를 한 사업가 金모씨는 지난주 검찰이 참고인으로 소환하기 직전 해외로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관련자들의 잠적과 출석 거부로 그렇지 않아도 더딘 홍업씨 수사가 더욱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범죄 혐의가 포착된 李씨는 지명수배를 하고,柳씨는 강제 소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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