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封建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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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봉건제(封建制)에 따라 봉해진 이는 그 땅을 자기의 땅으로 여겨 그 백성을 자식으로 대하며(私其土 子其人) 그 풍속에 맞춰 정치를 행하므로 교화를 시행하기가 쉽다. 군현제(郡縣制)에 따라 임명된 이는 억지 심정으로 진급만을 생각할 뿐(思遷其秩)이니 어찌 잘 다스릴 수 있겠는가?”

당(唐)대 문장가 유종원(柳宗元, 773~819)이 지은 정치논문 『봉건론』에 보이는 봉건론자들의 주장이다. 전통시대 중국 정계에서는 봉건·군현 논쟁이 치열했다. 지방자치에 가까운 봉건제는 유교가 숭상하는 주공(周公)의 주(周)왕조에서 전형적으로 시행됐기에 지지파가 많았다. 중앙집권론 격인 군현제는 덕을 잃고 의를 팽개친(失德棄義) 왕조로 평가받는 진(秦)나라가 시작했다는 이유로 반대파가 많았다. 중국인들은 좋았던 옛날과 덜 좋은 현실을 대비한 뒤, 과거를 흠모하는 복고론을 좋아했다. 하지만 군현제 지지론자였던 유종원은 혹독하게 봉건제를 비판했다.

“주(周)의 사적(事跡)은 분명 문제점을 보여준다. 제후들은 교만하고 재물을 탐내며 전쟁을 좋아했다. 어지러운 제후국은 많고 안정된 제후국은 드물었다. 제후들은 혼란한 정치를 변화시킬 수 없었으며, 천자는 제후를 교체할 수 없었다. 그 땅을 자기 땅처럼 여기고 백성을 자식처럼 대하는 이는 백 명 중에 하나도 없었다. 잘못은 제도에 있지 시정(施政)에 있지 아니했다…천하의 상도(常道)에 의하면, 안정된 통치[理安]가 민심을 얻게 한다. 현명한 이를 윗자리에 앉히고 재능이 부족한 자는 아랫자리에 두어야 통치가 안정된다. 지금 봉건제는 세습해 통치하는 방식이다. 사직(社稷)에 이로운 일을 하여 백성을 통일시킨다 해도, 봉록을 독점한 세습 대부들이 전국을 다 차지할 것이다. 성현이 출현해도 천하에 공업을 세울 수 없다. 봉건제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민선 5기 지자체장의 임기가 막 시작됐다. 6·2 지방선거로 정부 여당에 반대되는 공약을 내세운 광역지자체장들이 많이 당선됐다. 조정에 반기를 든 제후를 임명한 셈이다. 그들 중에는 대권을 꿈꾸는 이들도 있다. ‘민심을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得民心者 得天下)’라는 중국의 사극 주제가가 있다. 민심을 얻는 첩경은 안정된 통치다. 아무쪼록 신임 제후들의 편안한 정치를 기대한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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