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확 쏠린 '뉴욕의 갱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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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제 아무리 자존심을 자랑하는 칸 영화제도 할리우드 별들이 발산하는 광채만큼은 무시하기 힘들었다. 제55회 칸 영화제가 엿새째로 접어든 지난 20일 오후. 영화제의 메인 상영관인 팔레 드 페스티발 앞 광장은 막 도착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카메론 디아즈를 보기 위해 밀려든 인파로 발디딜 틈 없이 붐볐다.

이들의 방문은 단편 부문 심사위원장이기도 한 마틴 스코시즈(60)감독의 신작 '뉴욕의 갱들(Gangs of New York)'의 홍보를 위한 것이었다.

스코시즈 감독은 10년 간의 구상 끝에 완성한 작품의 일부를 이날 최초로 공개했다. '스페셜 익스텐디드 프리뷰'라고 그가 명명한 이 홍보용 필름을 위해 그는 7주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뉴욕의 갱들'은 1846년부터 1863년까지 뉴욕 거리에서 벌어졌던 아일랜드계 갱과 이탈리아계 갱의 유혈 다툼에 얽힌 복수와 사랑을 그린 영화다. 디캐프리오가 목사인 아버지를 도살자 빌(대니얼 데이 루이스)에게 잃고 피의 복수를 다짐하는 암스테르담 발론의 역을 맡았다. 빌의 정부이면서 암스테르담과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는 제니 역은 디아즈의 몫이었다.

로버트 드니로와 더불어 스코시즈가 가장 총애하는 배우 중 하나인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기묘한 분위기의 카리스마 넘치는 두목 빌로 분해 말 그대로 완숙하게 연기했다. 로맨틱 코미디 위주의 전력 탓에 세간의 염려를 샀던 디아즈는 장중한 분위기의 이 대형 시대극에 별 어색함 없이 연착륙한 것으로 보인다.

스코시즈는 "미국의 역사는 길거리에서 시작됐다"며 "두 갱단의 탐욕과 싸움 등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얘기해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2001년 초 촬영을 일단락한 '뉴욕의 갱들'이 원래 개봉되기로 했던 날짜는 같은 해 크리스마스였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더욱 완벽주의자가 돼가는 스코시즈가 후반 작업에 엄청난 공을 들이는 바람에 예상보다 1년이 지난 올해 말이나 극장에 걸릴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내년 초께 볼 수 있다.

칸에 온 뒤 스코시즈는 '버라이어티'지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아직도 '뉴욕의 갱들'은 완전하게 끝내지 못했다"며 "대작이어서 오래 걸린다기보다 편집 등 후반 작업에서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는 아쉬움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영화 분량을 처음에 3시간으로 주장했던 그는 결국 제작자와 2시간40여분으로 맺기로 합의했다. 그는 또 이 영화의 DVD판을 위한 재편집을 허용치 않겠다고 밝혔다.

스코시즈는 이날 자신의 신작 말고도 선물 보따리를 하나 풀어놓았다. 지난 3월 타계한 할리우드 풍자 코미디물의 거장 빌리 와일더에 대한 오마주(hommage:경의)의 뜻으로 와일더의 대표작 여섯 편을 편집해 상영한 것이다.

그는 "와일더의 작품을 보고 또 보고 하길 수없이 했을 정도로 그의 팬"이라며 "나는 그의 영화들과 함께 자랐고 그의 작품들은 할리우드에서 보기 드문 아주 독특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사브리나'를 시작으로 '뜨거운 것이 좋아''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선셋 대로''제17 포로 수용소'등 추억의 명작들이 이어지자 팔레 드 페스티발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때론 탄성을 내뱉고, 때론 폭소를 터뜨리며 고인을 추모했다.

칸=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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