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멋진 축구 그 땀냄새의 文化史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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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모든 매니어는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해 보다 다양한 지식을 갖고 싶어합니다. 저 역시 축구에 대해 좀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축구에 대한 궁금증도 풀고, 동시에 영어 공부까지 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몇 년 전 인터넷을 통해 축구 문화에 관한 책을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각오와 달리 겨우겨우 읽어가며 근 1년간 다른 붉은악마 친구들에게 "나 이런 책도 읽는다네…" 하며 뽐을 낸 기억이 납니다.

그 책이 바로 『축구 전쟁의 역사』(원제 Football against the Enemy)입니다.

옥스퍼드대 졸업 뒤 현재 파이낸셜 타임스에서 축구경기 분석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저자는 크게 두 가지 화두로 이 책을 풀어갑니다. '축구가 어떻게 한 나라 삶의 양식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한 나라 삶의 양식이 어떻게 그 나라의 축구에 영향을 미치는가'입니다.

저자는 9개월 동안 22개국을 종횡사해하며 클럽 운영자·정치인·마피아·기자, 심지어 아주 가끔씩 시합을 하는 사람과도 만나 대화를 나누며 화두를 풀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단지 축구 그 자체뿐 아니라, 축구를 통해 그 지역 그 나라 사람의 사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총 2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1장이 서문이라면 본격적인 시작인 2장은 우리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거스 히딩크의 고향 네덜란드가 독일을 꺾고 유로컵에서 우승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네덜란드 국민은 독일의 침략을 받은 경험이 있기에, 마치 한-일전에서의 한국 사람들처럼 경기를 응원한 것 같습니다.

우승이 확정되자마자 국민 60%가 거리로 뛰쳐나가 축제를 벌였고 우승 기념 축구시집까지 나왔다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 대목에서 저는 1997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 때 한-일전이 떠올랐습니다. 축구를 중계하던 아나운서가 "후지산이 무너집니다!"라는 유명한 방송 멘트를 남겨 더욱 인상에 남는 경기였지요.

3장은 분단 시절의 동독 이야기입니다. 통일 운동의 하나로 이야기되는 경평전의 부활이나, 평양에서 김주성 선수가 경기 중 골을 넣고 관중들에게 꾸벅 절을 하던 모습을 기억하신다면 흥미가 배가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16장의 아르헨티나가 월드컵을 준비하는 이야기 속에서 88년 올림픽을 준비하던 한국 이야기를 비교한다면 지나칠까요? 불법건물 철거와 노점상 단속, 환경미화…. 이번 월드컵 때 포장마차까지 단속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19장의 이야기는 축구가 구교와 신교의 대리전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응원단의 명칭 문제로 공격을 받고 있는 저희 모임으로서는 종교의 관용과 포용성, 문화적 상대주의를 인정하는 사회가 빨리 왔으면 합니다.

어쨌던 간에 이 책을 읽으면 독자들은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세계인으로서의 보편성과 지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아하, 이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구나' 하는 인간으로서의 동질성과, 아무리 똑같은 룰의 축구를 해도, 관람하고 응원해도 그 민족만의 고유한 특질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책은 축구가 단순한 오락이나 스포츠를 넘어 한 국가나 개인의 삶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하나의 상징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이 책이 월드컵 특수라는 막차를 타고 이제서야 번역 출간되는 한국 축구문화의 현실이 아쉽기도 하고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우리 국가대표팀의 선전과 함께 보다 성숙한 축구문화가 꽃피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신인철<축구응원단 붉은악마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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