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에 휘둘린 민주당 … 집시법 돌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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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집시법 야간집회금지조항의 개정시한(30일)을 닷새 앞두고 여야가 또 다시 법 개정안 합의에 실패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위원장 한나라당 안경률 의원)는 25일 위원장이 질서유지권까지 발동해 가까스로 회의를 열었지만 절충안을 마련하는 데는 실패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이날 “제1야당이 불법 폭력시위를 저지르는 과격 시민단체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비판했다. 집시법 개정 협상이 무산된 데는 2008년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시민단체의 힘이 작용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들이 협상에 개입해 “촛불 시민들의 힘으로 지방선거에 승리한 것 아니냐”며 민주당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당초 민주당은 23일 오후 행안위 법안소위까지는 소극적 모습을 보였다. 이날 오후 5시를 넘겨 3시간가량 토론 끝에 한나라당 진영 소위원장이 한나라당 조진형 의원 안(밤 10시~오전 6시)보다 금지시간을 한 시간 줄인 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의 중재안(밤 11시~오전 6시 금지안)을 ‘표결에 부치겠다’고 하자 백원우 의원 등 민주당 소위위원 3명은 퇴장했다. 소위위원 9명 중 6명의 찬성으로 수정은 통과됐다.

다음 날인 24일 오후 상황이 반전됐다. 참여연대·인권단체연석회의 등 시민단체 대표 10여 명이 법안소위 통과 소식을 듣고 민주당 원내대표실로 행안위원들을 항의 방문한 뒤다. 이들은 민주당 의원들에게 “민주당은 2008년 촛불을 들고 경찰에 두들겨 맞으며 정부·한나라당에 맞섰던 시민들의 지지로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며 “야간집회금지조항이 통과돼 집시법 위반 재판에서 줄줄이 유죄판결이 나면 무슨 낯으로 볼 건가”라고 비판했다. 결국 24일 오후 2시30분 국회 행안위 회의장에 올라온 민주당 이석현 의원 등 6명은 한나라당 안경률 행정안전위원장이 자리를 뜨자 곧바로 위원장석을 점거하며 밤샘 농성에 돌입했다.

국회 행안위 회의장 주변에서 양당 간 물밑 절충 과정에선 민주당이 시민단체 관계자와 한나라당의 중재안을 논의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금지시간대를 밤 12시 이후로 늦추는 양보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를 민주당 행안위 간사인 백원우 의원은 시민단체 대표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와 상의했지만 불발됐다.

정효식·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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