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가장 깊은 마을 300년 만에 ‘하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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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북한산성 계곡 주변 북한동 마을에서 조상 대대로 300년간 살아온 주민들이 올 연말께 고향을 떠난다. 북한산 계곡의 수려한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북한산성 계곡 주변에서 음식점 등을 운영해 온 주민 55가구를 이주시킬 예정이라고 24일 밝혔다. 주민들은 계곡 입구에 새로 마련된 상업 지역 내 이주단지로 옮겨가 가구당 265㎡씩 토지를 분양받고 음식점 영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주민들이 떠나는 북한동 마을은 북한산성 계곡 입구에서 상류까지 2㎞ 주변 지역이다.

북한산 마을이 생겨난 때는 조선 숙종 37년(17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산성 축조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마을이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이 마을은 1968년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의 침투사건 이후 각종 규제에 시달렸다. 군사보호지역·그린벨트·문화재시설지구로 묶인 데다 83년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이다. 주택의 증·개축이 안 되고, 북한산 계곡을 오염시킨다는 각종 민원을 받았다. 주민들이 등산객을 상대로 음식점을 운영하면서도 정화시설을 갖추기 어려웠던 탓이다.

공원관리공단은 2001년부터 이 마을의 이주를 추진키로 하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삶의 터전을 등질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다 주민들도 보상과 이주 문제에 동의하고 지난해 6~11월 이주단지 토지분양에 참여했다.

4대째 이 마을에서 살고 있는 이재근(48)씨는 “보상비가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온갖 규제에 묶였던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하고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요구를 거스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보상비(365억여원), 철거·정비비, 이주단지 조성비 등 총 512억여원이 들었다. 주민들이 떠난 곳엔 사찰 7곳과 암자만 남는다.

공원관리공단 박기연 공원시설팀장은 “55가구 가운데 전통 한옥 형태를 띤 5개 건물은 철거하지 않고 남겨 마을의 역사와 생활상을 기념하는 홍보관과 탐방객 쉼터, 전망대 등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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