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代는 괴로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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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40대 은행장이 등장하면서 50대 은행원은 이제'선택받은 소수'가 돼버렸다. 세대교체 바람 속에 은행원의 황혼이 전보다 5~10년 일찍 온 것이다. 한 은행 임원(44)은 "40대에 은행장을 해보고 50세가 되면 지역사회를 위해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위기의 50대 은행원=제일은행을 제외한 8개 시중은행의 직원은 3월 말 현재 5만5천4백95명. 이중 50대 은행원은 1천5백42명으로 2.8%에 불과하다. 은행직원의 연령별 분포는 30대가 50.3%, 40대가 24.5%, 20대가 22.4%의 순이다.

전체 인구 중 50대(50~59세)가 차지하는 비중(9.4%)에 비해 훨씬 낮은 수치다. 조흥은행의 경우 1997년말 4.7%였던 50대 은행원의 비중이 2.8%로 줄었다.

진작부터 50대를 찾아보기 어려워진 증권업계의 인력구조를 은행이 뒤이어 가는 모습이다.

굿모닝증권의 50대 직원 비율은 1.2%, 신한증권은 0.8%로 증권업계에서 50대 직원은 이미 '귀한 사람'이 됐다.

은행권에서 50대의 퇴조는 외환위기가 터진 97년 이후 구조조정→세대교체→연공서열 파괴 등 삼각파도에 휩쓸린 탓이다.

공적자금이 들어간 은행에서 50대 은행원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감원 1순위에 올랐다. 2000년 서울은행이 49년 이전 출생자를 모조리 몰아냈고, 다른 은행들도 '○○년생 이상은 명예퇴직'이라는 식이었다.

은행장이 젊어지면서 50대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1995년 60세였던 은행장의 평균 연령은 올해 54세로 낮아졌다.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97년 54세로 가장 젊은 행장이었던 내가 5년 만에 최고령 행장이 됐다"고 스스로 놀라워했다. 요즘은 연공서열을 파괴하는 인사가 유행을 타면서 나이 많은 은행원들이 밀려나고 있다. 지점장 자리를 후배들에게 내주고 직위가 한두 단계 낮아진 국민은행 직원 2백여명이 그런 경우다.

◇나이보다 실력=이강원 외환은행장 내정자는 "50세는 경험이 있으면서 열정도 있는 나이"라고 말했다. 경험과 패기를 모두 갖추어 큰일을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홍석주 조흥은행장은 "행장보다 나이 많은 직원이 2백80여명에 이르지만 생물학적 연령은 의미가 없다. 의욕과 전문성이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최수종 국민은행 전략기획팀장은 "특기가 없고 자기영역이 없다 보니 나이에 치이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50대 은행원'은 약점이 많다. 우선 개발연대부터 은행에서 보낸 50대는 '지시'대로 움직이는 데 익숙하다. 변화에 더딘 것은 당연하다. 한 시중은행장은 얼마 전 "30년 넘게 보고 배운 게 뻔한데 어떻게 달라지겠느냐"라고 말했다.

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 대표는 "40대는 50대에 비해 위험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활용하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능력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은행출신을 배제하려는 것이나 안정성과 보수성이 중시되는 은행경영의 특성을 무시하고 '젊은 피'만 찾으려는 풍조 역시 경직된 사고란 지적이 많다.

또 50대 인구가 베이비붐 세대인 30대의 절반,40대의 60% 수준인 우리나라의 인구 분포를 고려하면 50대의 활용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상황이다.

허귀식·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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