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기자의 미국생생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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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미국에 있는 모든 한인 학생이 우등생일 수는 없다. 개중에는 사춘기 직전에 부모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낯선 이민환경에서 힘겨워하다 결국 방황하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 미국 교육제도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바로 이렇게 엇길로 나간 ‘문제아’들을 끌어안는 ‘컨티누에이션(continuation)고교제’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일반 고교에서 학업을 지속할 수 없는 학생들이 고교 과정을 제대로 마칠 수 있도록 운영되는 일종의 대안학교다.

졸업시즌만 되면 몇 년 전 한 컨티누에이션 고교 졸업식장에서 만난 한인 청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도 초등학교 때 이민 와 흔들리는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다. 중학교 시절만 해도 제법 성적도 좋고 똑똑하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9학년부터 갑자기 학교 밖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0학년에는 본격적인 비행(非行)을 시작하면서 학교를 떠났다. 그렇게 1년 반의 시간을 보낸 어느 날 자신이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중학교 친구들은 벌써 졸업반이 됐는데 자신은 이러다 고교 졸업장도 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더럭 겁이 났던 모양이다.

다시 학교로 돌아간 그에게 카운슬러는 대안학교를 추천해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려면 220학점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그가 갖고 있는 학점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 일반학교에선 불과 1년 남은 기간 동안 학점을 모두 이수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일반학교는 1년이 2학기제로 운영되지만 컨티누에이션 고교는 3학기로 운영되기 때문에 그는 이전 고교에서 못 마친 과목들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었다.

학생 수가 적어 같은 반 학생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교사들의 지원도 적극적이었다. 또다시 1년 반이 지나서 그는 고교 졸업식장에 섰다. 교사들이 선정한 ‘성실한 학생’상도 받았다. 당시 그의 목표는 대학 졸업장이었다. 다른 주로 이사한다며 연락이 끊겨 지금 그가 목표를 향해 잘 걸어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 제 인생의 3막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하던 그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은 분명히 화려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었다.

김소영 중앙일보 교육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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