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섹스·마약의'비빔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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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지난해 극장가를 주물렀던 '조폭 영화'의 변형판이라고나 할까. 충성과 의리로 똘똘 뭉치고, 탄탄한 어깨와 주먹으로 무장한 조폭 대신 이번엔 뒷골목·공터에서 아이들이나 괴롭히는 '껄렁패'가 출동했다. 이른바 '양아치'들이다.

제목 '정글 쥬스'(사진)는 본래 집에서 만든 독한 밀주를 일컫는다. 간혹은 섞은 술, 즉 '폭탄주'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최근 들어선 여러 종류의 약을 섞은 즉석 환각제, 혹은 여러 술을 섞어 강한 맛을 내는 칵테일을 지칭하기도 한다. 영화는 단어의 뜻처럼 폭력·섹스·마약·욕설·깡패·경찰·도주·추적 등 다양한 요소를 뒤범벅하며 경쾌한 웃음을 유발하려고 든다.

그러나 그것은 연출 의도에 불과할 뿐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다. 갖은 양념과 고명이 제대로 섞이지 않고 제멋대로 노는 비빔밥을 먹는 느낌이다. 중간중간 폭소를 자아내는 코믹 장치를 삽입하고, 양아치들의 좌충우돌 액션을 덧씌우는 등 볼거리 제시에 전력을 쏟았으나, 각 장면들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단지 상황 나열식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도 '경쾌하게' 변했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미래에 대한 비전, 혹은 앞날에 대한 설계란 전혀 없이 하루하루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게' 소비하는 뒷골목 청춘의 오늘을 그리고 있다.

'정글 쥬스'는 청량리 사창가 일대에서 배회하던 기태(장혁)와 철수(이범수)가 우여곡절 끝에 취득한 마약 때문에 '거리의 소녀' 멕(전혜진)과 함께 부산 자갈치 시장으로 도주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들을 쫓는 조폭의 중간보스역의 민철엔 손창민이 캐스팅됐다.

'터프 가이' 장혁이 대책 없는 젊은이로, '귀공자' 손창민이 무식한 행동대장으로 철저하게 망가졌으나 튼실하지 못한 플롯 탓에 이들의 변신 시도가 도드라지지 않는다. 조민호 감독의 데뷔작이다. 18세 이상 관람가. 22일 개봉.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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