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발전 파업> 氣싸움속 물밑절충 노·정, 春鬪가늠자 인식… 장기화엔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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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철도·발전 노조가 25일 동시 파업에 돌입함에 따라 노(勞)·정(政)이 겉으로는 대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이번 파업을 지원한 민주노총이 26일 정오부터 전국 사업장에서 동시 파업에 들어간다고 선언, 사태 수습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정부의 입장 역시 강경하다.이번에 미리 춘투(春鬪)의 예봉을 꺾지 못할 경우 월드컵과 양대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때문에 정부는 "이번 파업은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규정했다. 공기업 민영화 철회는 노동관련법 상 쟁의행위 대상이 아닌 데다 노조가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 회부 결정을 무시하고 파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노동계는 물밑 접촉을 통해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파업이 장기화하면 모두에게 손해이기 때문이다.

◇파업 배경=정부는 노동계와의 힘 겨루기 과정에서 방심하다 노조에 허를 찔렸다. 정부 관계자들은 파업 직전까지 "설마 공공 부문이 파업을 강행할 수 있겠느냐"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정부는 당초 노조가 공기업 민영화 문제를 거론하지만 않으면 근로조건 개선 요구를 가급적 들어주면서 적당히 파업을 무마하려 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처음부터 이번 파업을 올해 노사 쟁점에서 기선을 제압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민주노총의 경우 주5일 근무제 도입, 단병호 위원장 석방 등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기 위해 파업 강행을 지원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상 초유의 공공 부문 동시 파업이 가능했던 것은 지난해 가을부터 3개 노조가 공기업 민영화 저지라는 목표를 세우고 공동투쟁본부를 가동하는 등 공고한 연대의 틀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가스공사 노조가 24일 밤 사측과의 단협에서 사실상 쟁점에 합의하고도 조인식을 미룬 채 철도·발전 노조의 파업 대열에 일시 동참한 것이 이를 입증하는 대목이다.

정부는 3개 노조의 요구 사항인 노동조건 개선과 관련, 그동안 일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철도·가스·발전산업 구조 개편의 담당 부처인 건설교통부와 산업자원부는 지난 22일 노동 관련 장관 회의가 열리기 전까지 노조와의 대화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

◇전망=정부와 철도·발전 노조는 마냥 파업을 오래 끌어 득될 것이 없다. 국민 생활을 볼모로 파업을 지속할 경우 노조에 미치는 후유증이 심각할 수밖에 없다. 또 정부가 이번 파업을 본보기로 삼아 불법 파업에 초강경 자세를 고수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정부로서는 월드컵을 앞두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판에 공기업 노조가 파업을 계속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스 노조가 파업을 철회한 것은 다른 노조들의 향후 행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스 노조의 파업 철회는 3개 부문 노조의 단결력에 흠집이 생겼다는 뜻이다.

때문에 양 노조는 국민 불편이 없는 선에서 단기적으로 파업을 이끌다가 명분만 생기면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노조가 협상을 재개할 경우 민영화 철회 요구보다 근로조건 개선이라는 실리를 하나라도 더 챙기려는 전략을 펼 전망이다.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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