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초당적 해법 절실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부시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앞두고 북·미 대화를 촉구하는 국회 결의안을 내놓는 문제를 둘러싼 여야의 자세가 미덥지 못하다. 돌아가는 사정이 그런 초당적인 외침과 딴판인 탓이다.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한 시각 차이가 큰 데다 워싱턴 포스트 보도를 둘러싼 말싸움이 거칠다. 민주당은 이회창 총재가 지난번 미국 방문 때 대북 강경 노선을 주문하고 햇볕정책에 제동을 거는 행태를 보였다는 주장이며, 한나라당은 한·미 공조가 틀어진 외교 실패의 책임을 야당에 떠넘기는 술책이라고 반박한다.

무엇보다 부시 발언을 계기로 다시 번지는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과 반목을 정치권이 부추기는 양상을 띠고 있는 점이 문제다. 그 대립의 한복판에 있는 반미 문제는 한반도 긴장의 진원지가 미국이라는 의심을 넘어 북한을 대변하는 것 같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 같은 남남 갈등을 풀어 주어야 할 정치권이 국론 분열을 조장·편승하는 듯해 답답한 것이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의 전략적 기조에 대한 면밀한 수읽기를 하면서 공세의 수위 조절을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할 때 우리 정치권의 대응은 아마추어적이어서 한심스럽다.

이제 정치권은 국익 차원에서 각자의 자세를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 9·11 테러 사태 이후 세계 질서의 변화 속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논쟁의 우선순위에서 빼기는 곤란하다. 퍼주기 논쟁 속에 계속된 지원에도 불구하고 굶주리는 주민 참상을 뒷전으로 돌리는 북한 정권의 자세 전환이 시급하다는 점도 확실하다. 그리고 이런 논란들을 밀어붙이기가 아닌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한·미 동맹이며, 남북 관계든 북·미 관계든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인식은 그런 점에서 적절하다. 정치권의 초당적 해법도 여기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 결의안 문제를 놓고 여야가 다시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