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원 “쇠고기 수입제한 철폐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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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원이 한국 등 일부 국가에 미국산 쇠고기를 제한 없이 수입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한동안 잠잠했던 미국의 쇠고기 시장 개방 압력이 다시 높아질 전망이다.

3일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미 상원은 지난달 27일 본회의에서 ‘미국 쇠고기 및 부산물 수출을 위한 시장접근 확대 지지안(상원 결의안 544호)’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결의안은 대표적인 ‘비프 벨트(쇠고기 주요 산지)’ 출신인 맥스 보커스(민주·몬태나) 재무위원장이 주도했고, 민주·공화당 소속 의원 9명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

결의안은 “미 농무부의 조사 결과 미국에 광우병(BSE)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고, 국제수역사무국(OIE)도 미국을 ‘광우병 위험통제국’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국가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2003년 이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제한해 미 축산업계에 심각한 손실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결의안은 수입제한 국가로 중국·일본·홍콩·대만·한국·멕시코·베트남 등 7개국을 지목했다. 결의안은 이어 “이들 나라의 수입제한 조치는 비과학적”이라며 “(미)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이들 나라에 수입개방을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결의안은 법적인 구속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한국 정부도 결의안이 중국이나 일본을 겨냥한 것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결의안은 수입제한 정도가 심한 나라부터 차례로 언급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 중 다섯 번째로 언급됐다.

실제 한국은 30개월 미만의 쇠고기와 부산물까지 수입을 허용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으며 일본은 도축 당시 20개월 이하인 쇠고기와 부산물만 수입을 허용하고 있다. 장기윤 농식품부 표시검역과장은 “미국이 곧 일본과의 추가협상을 할 예정인데 여기서도 연령을 30개월 정도로 높이는 수준에서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에만 시장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의회에 상정해야 하는 미 행정부로선 의회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다. 드미트리어스 마란티스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지난 2월 “FTA 비준을 위해 자동차와 쇠고기 분야에서 추가로 진전이 이뤄져야 한다”며 압박을 가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 양국 정부는 2008년 촛불사태 이후 벌인 재협상에서 “한국 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한다”는 모호한 문구로 합의해둔 상태다. 문제는 ‘한국 국민의 신뢰가 회복된 때’가 언제냐는 점이다.

육류 수입업계에 따르면 올 1분기 미국산 쇠고기 수입량은 1만7400t으로 전 분기(1만5618t)보다 10% 넘게 늘었다. 국내 쇠고기 시장에서 미국산이 차지하는 비율도 31.7%로 오르며 호주산(50.6%)을 바짝 뒤쫓고 있다. 일부 미 의회 의원은 이를 ‘신뢰 회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신뢰 회복’을 의미하는 명시적인 지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익명을 원한 농식품부 관계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조금씩 늘고 있는 상황에서 30개월 이상까지 허용하면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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